악의 하인 AU. 오마-릴리안느, 슈이치-알렌, 카에데-미카엘라, 아마미-카일 이런 느낌. 정말이지 어떤 장르에 갖다 붙여도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마법의 노래야
적의 혁명군은 모모마키. 둘을 등장시키기엔 내 창작세포가 한계에 달했어. 미안
솔직히 캐디 처음 공개됐을때 둘이 닮았다고 생각한 사람 나와봐요. 정작 이제 보니까 신구지하고 슈이치가 닮았지만. 신구지라면 슈이치 처음봤을때 누나 생각났을거 같다
구글닥스기준 7페이지, 2438단어, 7954자, 공백 포함 10287자. 와우!
악의 하인 들으면서 보면 감성폭발. 새벽에 봐도 감성폭발.
운명이 나눈 가여운 쌍둥이. 바로 나 사이하라 슈이치와 이 왕국의 지도자 오마 코키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들은 원래 같은날 같은시간 같은 피와 함께 태어났다. 그렇지만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던 나는 왕국의 후계자 자격에서 박탈되어, 7살부터 유명한 탐정 밑에서 자랐다. 탐정의 견습생으로서 추리에 관한 모든것을 배운지 7년이 되던 해, 나는 다시 궁전으로 돌아갔다. 다만 이번에는 ‘하인’의 신분으로서.
코키치, 아니 오마 군은 기억 그대로였다. 악의없는 장난을 좋아하고, 제멋대로일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 마음을 포함한 모든 감정을 거짓말로 숨겨버린다. 내가 하인으로서 그를 모시는 일과의 대부분은 악의 총통인 그의 시중을 들고 호위하는 일이었다. 그의 비밀결사 놀이에 어울리다 보면 잠시동안은 말못할 고민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에게는 ‘사실은 피로 맺어졌지만,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를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고, 그게 바로 나라는걸.
그런 불편한 사실을 잠시 잊고 싶을 때마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린다. 진실로 진실을 잠시 덮는 것이다. 어렸을때 천둥이 칠때마다, 코키치는 캐노피가 달린 침대에 베개와 이불로 비밀기지를 지어놓고 그곳에 나를 끌어들인뒤 나를 껴안고 천둥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희미하게 들려오던 멜로디에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전설-유리병 안에 편지를 넣고 바다에 흘려보내면 그 편지에 적힌 소원이 이루어진다는-을 바탕으로 한 가락을 붙인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천둥소리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고 대신 나의 노래만이 어둠을 채웠다. 코키치는 항상 노래가 끝나기 전에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에는 둘이서 몰래 궁전을 빠져나가 숲으로 모험을 떠난 일이 있었다. 이 나라와 이웃 나라의 경계가 가로지르는 광활한 숲. 숲은 어린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곳이었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어두웠고 길을 찾기도 어려웠다. 거기에다 해도 점점 저물기 시작해서 결국 우리들은 길을 잃었다. 겁에 질린 코키치가 울먹거리기 시작했을때, 또 그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을 좇아 가니 어느새 궁전이 다시 우리들 앞에 서있었다. 결국 그 노래의 정체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과거의 일. 두번다시 일어날 수 없다. 나는 하인이고 너는 총통. 우리들 사이의 틈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갈라져 버렸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것은 너를 지키는 것 뿐. 내가 악이 되더라도, 세계의 모든 것이 너의 적이 되더라도 너를 지킬테니까 너는 나를 위해 웃어줘. 그거면 만족해.
악의 총통의 호위무사 겸 하인 외에도, 나의 직업은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탐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탐정이란 단어를 보면 체크무늬 망토와 파이프를 들고 날카로운 눈길로 범인의 발악을 논파하는 사람을 떠올리겠지만, 이 나라에서 탐정이 맡는 주 임무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논리의 칼을 휘두르는 사람. 진실의 탄환으로 거짓을 논파하는 정의의 사도. 아침해가 밤의 장막을 걷어올리면 분홍색에 잠긴 창백한 시체가 발견되는것을 당연하단듯이 간과하는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미약하게나마나 숨쉬고 있는 정의를 다시한번 일깨우는 사람. 탐정 사이하라 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나도 탐정으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나의 주 무대는 이 보라색 나라와 이웃 나라 녹의 나라였다. 지금도 처음으로 맡은 의뢰가 생각난다.
어느 소녀를 찾는 일이었다. 사람을 찾는 일이면 늘 그랬듯, 단서는 별로 없었고 가능성은 많았다. 가능한 계획을 검토할때 어렴풋이 그 음을 들었다. 소리가 점점 커지고 강렬해졌다. 마치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그 화음을 따라갔을때 숲이 나왔다. 나는 망설임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로 둘러쌓인 벌판. 나뭇잎에 부서져 내린 햇빛의 폭포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서술하는 이세계 만큼이나 몽환적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그녀가 있었다.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된 그 화음에 사로잡힌듯,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 음악이 들리기라도 하는것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순수하게 아름다웠다. 그녀의 오빠이자 의뢰인에게 그녀를 데려다주고 헤어질때까지 그녀의 미소를 잊지 못했다. 의뢰인의 진심이 담긴 감사와 더불어 내가 처음으로 진실을 밝힌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탐정이란것에, 자긍심을 품은 순간이었다.
악의 총통은 그런 탐정의 정의를 잔인할 정도로 교묘하게 비틀었다. 삶과 죽음이 부딪혀 흘러넘치는 감정에 냉정할 정도로 익숙해져,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고 사실에 미친 사람. 그는 거기에 ‘하나의 가련한 목숨을 이 세계에서 없애버리는데 제일 제격인 사람’이란 정의를 덧붙였다. 그 잔인한 정의의 첫 예시는 바로 내가 되었다.
그에게 거슬리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였다. 내가 거둔 목숨의 명단이 늘어날수록, 내 손은 더이상 떨리지 않게 되었다. 초반의 무언가가 죽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곧 떨쳐 버렸다. 코키치, 아니 총통을 위해서니까. 총통이 원하신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명단이 16장에 달할 무렵, 늘 그래왔듯 새로운 제거대상을 의뢰받았다. 총통에게서 사진 한장을 받았을때-잊고 있었던, 아니 침묵당했던 순수한 초심이 다시 떠올랐다. 차마 내 손으로 없앨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망설였다.
“으응~? 문제라도 있는거야, 사이하라쨩?”
처음으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나는 사랑과 혈연 사이에서 혈연을 선택할 비겁한 겁쟁이여서, 늘 그래왔듯이 그 의뢰를 받아들였다.
“……아닙니다, 총통.”
다시한번 망설임과 마주한다면 견딜 수 없을것 같아서, 나는 일사천리로 작업을 진행했다. 매정하게도 동일한 화음이 나를 그녀에게로 이끌었다. 바로 그 환상과도 같은 공간으로. 그 환상과 이야기하는 그녀에게로. 지금 이 순간이 환상이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모른다…
그녀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칼을 그녀의 목에 박았다. 피할수 없다면 그녀를 최대한 고통없이 보내주자고 몇번이고 다짐했다. 한순간이었지만 천년같았던 그 일격동안 그녀의 눈이 흔들리다 얼어붙었다. 놀람? 당혹? 혼란? 공포? 체념? 복잡한 감정의 콜라주의 찰나였다.
자수정색 눈이 감기고, 붉은 피는 금색 폭포에 스며든다. 마젠타만이 난폭하게 덧칠될 뿐이다.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처음으로 시체를 부검했을때도, 처음으로 손에 피를 묻혔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처음으로, 탐정이란것을, 혐오했다.
그날 하늘은 맑았건만 슈이치의 뺨에는 비가 내렸다.
녹의 나라가 전쟁을 선포했다.
적의 혁명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보라색 나라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궁전이 이렇게 비었던 적은 없었다. 비밀결사 DICE는 총통의 명령으로 해산되었다. 역사는 그들을 반란이 일어나자 리더를 버리고 도망친 겁쟁이들로 기록하겠지. 승리자의 시점에서 결정되는게 역사니까. 결국 극악무도한 악의 총통은 악의없는 장난을 즐겼을 뿐인,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떠맡게 된 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얼어붙은 궁전 안, 두 사람만이 남았다. 물론 그 중 하나는 나고, 다른 사람은-
코키치는 불가피한 죽음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항상 쓰고 있던 천진난만한 미소 뒤에 숨겨진 공포에 질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당연한 사실인가?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내가 처음으로 도달한 진실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진실과 거짓을 저울질하는 탐정으로서.
이미 공평과는 거리가 멀어진 나에게 그런 권한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코키치를 심판할 수 있다면 나는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고 싶다. 그가 지은 유일한 죄는 악의 후계자로 태어난 것뿐이니까. 직접 손에 피를 묻힌건 바로 나니까…만약 코키치가 악이라 불린다면, 나에게도 같은 피가 흐르고 있으니 충분히 악이라 불릴 자격이 있겠지.
그러니까, 죽어야만 하는 사람은 코키치가 아니라 바로 나.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결심했다.
하얀 구속복같은 제복. 칠흑같은 망토와 모자. 몇년동안 봐온 그 옷을 직접 입으니 이질적인 불편함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이질적이었던건 내 호박색 눈을 가리는 자수정색 렌즈였다. 아니, 오히려 그 이질감이야말로 코키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나는 회의실에서 코키치를 찾았다. 그는 발코니에서 서서히 몰려오고 있는 군중들을 허무한듯, 체념한듯 바라보고 있었다.
“오마 군.”
“…무슨 일이야, 사이하라쨩?”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걸 들었다. 아니, 너가 항상 감정을 죽여 순진함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해도 나는 늘 너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어. 지금의 너는…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어. 하지만 괜찮아. 넌 죽지 않아. 왜냐면 내가 지키니까.
그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어? 사이하라쨩이 왜 내 옷을 입고 있어…?”
대답 대신 나는 준비한 장거리 여행용 망토를 씌어 주었다.
“도망쳐.”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눈치채자마자 안그래도 창백하던 얼굴이 더 새하애졌다. 이럴때 보면 머리는 좋단 말이지…
“사이하라쨩이 죽잖아…! 싫어, 도망 안 갈 거야, 아니 도망 못 가!”
뭐 이런 반응도 예상하고 있었고, 어차피 결정타는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법이니까.
“괜찮아, 우리들은 쌍둥이니까-”
또다른 잔혹한 진실에 코키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거야.”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우리들이 15cm나 키차이가 나고, 코키치의 검보랏빛 머리는 나의 남색 머리보다 미세하게 더 길고, 결정적으로 나는 바보털과 긴 속눈썹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왠만한 사람들은 속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들은 피를 나눈 쌍둥이니까.
“미안해…미안해 사이하라쨩…흐읍…정말 미안…”
아니야, 사과할 필요 없어.
시간이 없다. 군중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럼 안녕, 코키치. 바로 도망쳐야돼.”
나는 마침내 그로부터 등을 돌려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사랑해.’
그말만큼은 가까스로 (눈물과 함께)삼켰다.
방을 나와서 복도로, 그리고 중앙현관의 원형계단으로 향했다.
코키치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아니면 발소리인가-이 점점 멀어진다.
계단을 막 내려오면서 초연한 듯 기품있게, 그리고 담담하게 반란군의 지휘관과 녹의 왕자를 맞이했다. 예전에 휘황찬란한 연회가 열릴 때마다 그랬듯이. 어라, 익숙한 얼굴들이네.
잠시 그들의 얼굴에서 당혹감과 망설임을 본 것 같았지만 나는 냉소적인 미소와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
감옥. 나는 지금 감옥에 갇혀있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이상,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 운명에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 예외는 항상 있으니까…
누군가가 돌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녹의 왕자, 아마미 란타로는 철창 너머 그 앞에 멈춰섰다.
“대체 왜임까? 여기서 뭐하는 검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당신은 총통이 아니잖슴까?! 사이하라군!”
나의 이름을 듣자 막 내뱉으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어째서임까? 어째서 총통 대신 죽는 검까? 죄값을 치루기 위해 죽어야 하는 사람은 총통이지 당신이 아니란 말임다!”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동생을 지키는 게 형 아니야? 동생을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포기할 각오는 이미 오래 전에 했으니까…상관없어.”
그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동생이 있으니, 아니 있었으니까. 그 동생은-
“그리고 어차피…카에데를 죽인건 나라고. 개인적으로 복수하는 셈 치고 날 죽여도 좋아. 그렇지만 역사는 당신을 사적인 복수를 국민의 바램으로 정당화한 비겁한 인물로 평가하겠지.”
그의 연두색 눈에서 놀람, 슬픔, 분노, 원망, 혼란을 동시에 보았다. 나를 두들겨 패고 싶은 분노와 같은 형으로서의 동질감이 섞여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미 란타로는 착잡한 표정으로 떠났다.
다시한번 적막이 찾아오자 치자색 눈에서 눈물이 나와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것을 깨달았다.
맞아. 거짓말이야. 죽고싶지 않아…! 싫어…죽는건 무서워…
그동안 나는 내 감정을 죽여서 목숨이 교차하는 문제를 해결해온 것이다. 죽음이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면서…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나는 어쩌다가 어린 나이에 탐정이 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사형선고를 받게 된걸까…
…나는 수수께끼를 해결하는게 재밌었을 뿐인데. 죽음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사라져버린 문제의 답을 알아내서 설명하는게 즐거웠을 뿐인데…
나라고 예외는 아니였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지금 죽고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죽음으로써 그녀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죽는 순간 하나의 음이 되어, 살아가는 도중 가끔 들었던 노래의 일부가 될 수 있는걸까? 다시한번 그녀와 화음을 연주할 수 있는 걸까…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 노래가 다시 들린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의 형상을 언뜻 본 것 같았지만 새벽의 첫 빛이 반짝이자 다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감히 그 환상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계시로 해석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 무엇보다도, 나의 정말로 귀여운 형제를 위해서.
철창 문이 다시 열렸다.
악역비도한 왕국의 정점에서 군림하던 총통의 최후가 다가왔다. 아니, 진실을 말하자면, 총통과 피를 나눈 형제이자 그의 가장 충성스러운 추종자였던 탐정의 최후가 다가왔다. 하늘은 그의 죽음을 기뻐하듯 무심하게, 구름한점 없이 덧없이 파랬다. 사이하라 슈이치는 그의 인생의 최종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최후의 한걸음 한걸음이 하나의 음이 되어 그의 장송곡을 연주한다.
아마미 란타로는 두번의 인연으로 만난 한 소년의 비극적인 운명을 원망했다. 적어도 그가 최소한으로 고통없이 가길 기도할 뿐이었다. 카에데라면 그를 용서하리라고 믿었다.
오마 코키치는 망토를 뒤집어쓴채로 군중들의 무리에 섞여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채지 않을까라는 불안감 보다는 그의 가장 가까웠던 부하이자 피를 나눈 형제가 자기 대신 죽는다는 죄책감과 공포에 휩싸인 채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의 문앞에 사이하라 슈이치는 서있다. 5cm 앞에 있는 자신의 5분 후의 운명을 당당하게 마주보면서.
사이하라쨩은 단두대 앞에서도 당당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걸까? 내 연기가 그렇게 좋았나? 아니, 아마 코키치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죽는 고통을 알려주기 위해서일거다.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거야? 오마 코키치는 바로 여기 있다는걸?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의 정체를 밝혀 이 악몽을 끝내고 싶은데 목이 막힌다. 아, 이게 바로 나의 형벌이구나. 소중한 사람이 대신 죽는 고통을 느끼는것…
“마지막으로 할말은?”
“무서워. 아니, 거짓말이야-나는 거짓말쟁이니까!”
자신이 입에 달고 살던 바로 그말. 그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이하라쨩의 입에서 나왔다. 그 거짓말에서 진실을 깨닫자 다시 죄책감이 목을 조른다. 차라리 지금 이 상황이 거짓말이었으면. 다시는 거짓말 안할테니까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
매정하게도 시계바늘은 움직여 오후 3시가 다가온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영원히 지금 이 순간에 얼어붙을 수 있다면-
안돼, 마지막으로 사이하라쨩에게 줄 게 있단 말이야…!
최후의 순간, 자수정색 눈동자와 자수정색(을 덧칠한 호박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나는 사이하라쨩을 위해 미소지었다. 처음으로 나의 진실한 감정을 담아서.
나는 그에 대답하듯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미소지었다.
오후 3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졌다. 덧없게 흰 피아노의 건반에서 손가락이 떨어지고 장송곡의 마지막 음이 울러퍼졌다.
그리고 나는 두번다시 사이하라쨩의 미소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두번다시 하늘의 푸름을 볼 수 없었다.
칼날이 9.8의 속도로 지면에 착지한 순간 내 시간은 얼어붙었다.
이제 두번 다시는 너의 미소를 볼 수 없다(흐릿한 호박색. 그 속눈썹에 눈이 쌓인 거 정말 예뻤는데). 두번 다시는 너의 손을 잡을 수 없다(평균보다 낮은 체온이었나. 그렇지만 평균 체온이 높은 나한텐 완벽했다). 다시는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생긴것만큼이나 여리여리하고 가냘프면서 조용했다. 동시에 섬세할 정도로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웠지). 잔인한 사실들을 자각하고 말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나를 압박해 왔다. 내가 무얼 저질렀는지 깨달은 순간 죄책감에 휩쓸려 익사할 것만 같았다.
잔혹한 현실에서 도망쳤다. 사람들의 시선따위는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없는 숲에 다다르자 거짓말처럼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감각이 감정에 마비되어 아무것도 느낄수 없었다. 오직 비탄의 눈물만이 내 얼굴을 더럽힐 뿐이었다.
필사적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사이하라쨩과의 추억을 다시 생각해냈다. 마법처럼 천둥을 몰아내던 사이하라쨩의 노래. 어두운 숲속에서 나를 이끌어준 따뜻한 손. 같이 먹던 브리오슈의 맛. 비밀기지 안에서 껴안은 가느다란 허리.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던 치자색 눈. 어째서 나는 그 모든것들을 잊어버리고 산걸까.
사이하라쨩이 말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말로 유리병에 소원을 적은 편지를 넣고 바다에 흘려보내면 소원이 이뤄지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너가 돌아올 수 없는건 알고 있지만, 너와의 추억은 절대로 잊고싶지 않아. 그 사실만을 되새기며 나는 유리병을 있는 힘껏 던졌다. 투명한 파란색에 잠기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점차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유리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평생 사죄하며 살아가겠어. 사이하라쨩이 살려준 이 목숨…하늘이 허락한 시간동안 너의 몫까지 계속 이어갈 거야.
유리병에 저녁노을이 부딪혀 파도에 부서져 내렸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숲 어딘가, ‘키보’라고 불리는 백의 존재가 있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지만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눈같은 머리와 하늘색 눈, 강철로 만든것처럼 이질적인 형체를 가진 자신을 꺼려하면서도 자신에게 ‘희망’이란 이름을 붙인 인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시작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건 쉽지 않았다. 그는 결국 미지의 영역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켰다.
그런 자신을 도와준 소녀가 있었다. 햇빛에 금색으로 빛나는 머리. 가끔 음악(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많고 많은 것들의 일부였지만, 그가 아름답다고 느낀 손꼽히게 적은 것들의 일부이기도 했다)에 대해 열정을 불태울때면 라일락색 눈이 순수한 기쁨으로 빛났다. 그녀를 통해서 단조로운 검은색에 색채를 입혔다. 한걸음 더 그 미스터리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해서, 곧 그녀는 사라졌다. 마젠타가 노란색과 연보라색 위로 난폭하게 덧칠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그 단조로움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은 색깔을 깨달아 버려서, 그는 다시한번 자신을 고립시켰다. 이번에는 눈부신 극채색 환상에.
그렇게 의미없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후 어느날 나무 밑에서 잠들어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소년은 자신을 슈키치라고 소개했다. 끝 종(終)자에 길할 길(吉)자. 흥미로운 한자의 조합이었다. ‘마지막 행운’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순수한 소년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 숲으로 이끌었는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침묵당했던 호기심이 다시 되살아났다.
저녁의 마지막 빛이 바다에 잠기는 시간. 항상 이 시간이면 슈키치 군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첫 별이 보일때쯤 돌아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일이 반복되자 끝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몰래 따라갔다. 유난히도 시원한 어느 한여름밤의 일이었다.
슈키치 군은 기도하는것 같았다. 목소리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사이로 조용히 뭉개져서 잘은 들리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몇 구절들을 들을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잔인한 진실을 들었음을 후회했다.
아.
이 자의 이름은 오마 코키치. 악역비도한 악의 총통.
수많은 사람들을 단순히 재미로 죽인 그가 어째서 살아있는거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의 총통을 처형하려고 했다.
그때 어느 한 소년의 형상을 보았다.
은하수같은 광택이 흐르는 밤하늘색 머리카락과 선명히 빛나고 있는 황금색 눈이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마치 한밤중의 숲속에서 한마리의 늑대와 마주친듯한 느낌을 주었다. 긴 속눈썹이 인상적인, 상당히 중성적이고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오마 군과 닮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 눈이 무언가를 말하려는듯 조용히 불타오른다. 찰나의 순간 스쳐지나간 생각을 확인하려고 입을 연 순간, 그의 형상이 미소지으며 사라졌다. 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계산하는데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 미소의 여운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키보?”
타이밍 좋게 그가 뒤돌아봤다. 보랏빛 눈에 이슬이 맺혀있는걸 언뜻 본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돌아가자.”
거짓말을 눈치챈걸까. 진실을 숨기려고 한걸까. …아니면 모든 진실을 고백하려는 걸까?
아직 그는 알 수 없다. 단지 닥쳐오는 현실을 받아들일뿐. 살아가는 이상, 잔혹한 진실과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사실을 부정하지도 굴복하지도 않고 나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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