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라 티스토리, 들여쓰기 기능은 왜 없앤 건데?!)

 

그동안 강녕하옵신지요. 저는 다시 뮤지컬 천국/지옥에 빠지고 뜻을 같이하는 새 동지들과 같이 자캐지옥에 빠져있었읍니다. 고증덕후+싸이코 너드를 작전참모로 들이면 매일같이 환상적인 연성을 맛보실 수 있사옵니다

 

I'll Be Here는 오디너리 데이즈 Ordinary Days 라는 뮤지컬의 수록곡으로, 뮤지컬 공식(언젠가 정리해 볼까요)중 하나인 '마지막에서 두번째 곡은 앨범 최고최악의 최루탄'을 훌륭하게 만족시키는 명곡입니다. 

 

저는 (그놈의) 해밀턴 애니매틱으로 이 곡을 접했고, 하루종일 눈물을 쏟은 다음, 바로 연성에 들어갔죠. 

고증덕후라는 것은 9.11 테러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2000년대 초반에 처음 상영한 뮤지컬(몇몇 분들은 눈치채실수도..ㅎㅎ)을 조사한다는걸 의미합니다.

다만 한국에서도 공연 했다는데 가사 봇을 뒤져도 극히 일부분밖에 찾지 못한거하고 뉴욕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건 2011년 6월 15일. 따지자면 작중 배경과 충돌하는게 유이한 한입니다... 깐깐한 고증덕후라 죄송합니다

 

유튜브에 있는 원본은 Lisa Brescia가 부른 버전인데, 애니매틱에서 쓰인 버전은 Rebecca Brierley가 부른 커버 버젼입니다. 가사가 살짝 달라요

더보기

커버 버젼 가사는 파란색으로 처리했습니다!

 

We met, of all places, in front of Gristedes 우리는, 많고 많은 곳 중에서, 그리스테디스[각주:1] 앞에서 만났지

Some freakishly cold winter's day 기막히게 추운 어느 겨울날에

I had on several unflattering layers of wool 나는 어울리지 않는 털옷을 몇겹 껴입었고

He slipped on the ice with his grocery bags full 그는 장바구니가 가득 찬 채 얼음에 미끄러졌어

So I rescued some Fruit Loops he dropped by the curb 그래서 도로 경계석에 떨어뜨린 후루트 룹스[각주:2]를 구출해줬어 

And he made some remark that my smile was superb 그러자 내 미소가 정말이지 최고라는 말을 했고

And I thought that was sweet and I started to go 나는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가려고 했는데

And he said, "Hey, whatcha doing tomorrow? 그가 물었어, "저기, 혹시 내일 뭐하세요?

 

Because I'll be here 왜냐면 저는 여기 있을게요

At the corner of Bleaker and Mercer, tomorrow at 7 블리커가와 머서가의 모퉁이에서 내일 7시에

If you want to meet up, I'll be waiting right here 만약 만나고 싶다면, 바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And in case there are two fellas waiting for you 그리고 만약 두 사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My name's John." 제 이름은 존이에요."

He waved, and then he was gone 손을 흔드더니 그는 사라졌어

 

Needless to say, I went back there to meet him 말할 필요도 없이, 그를 만나러 다시 거기에 갔지

Mostly to see if he'd show, and there he was 혹시나 나타날까 확인하고픈 맘이 대부분이었는데, 거기 있었어

Out in the cold with his jacket pulled tight 추위 한가운데 재킷을 단단히 입고서 말야

He took me to dinner and kissed me goodnight 내게 저녁을 사주고 잘자라는 키스를 해줬지

The next week we went to this terrible play 다음 주에는 정말이지 끔찍한 연극을 보러갔고

And the week after that drank hot chocolate all day 그 다음주에는 하루종일 핫초코를 마셨어

And suddenly, eight or nine months had flown by 그러더니 갑자기, 8이나 9개월이 순식간에 날아갔지

When he said, "Hey, whatcha doing the rest of your life? 그가 이렇게 물었을때, "저기, 남은 인생동안 뭐해?

 

Because I'll be here right beside you 왜냐면 내가 너의 곁에 있을게

As long as you want me to be, there's no question 너가 바라는 만큼 오랬동안, 의심의 여지가 없어

There is nothing I've wanted so much in my life 내가 이 정도로 인생에서 간절히 바랐던게 없었어

This might sound immature 유치하게 들릴지 몰라도

But I'm totally sure you're the one." 너가 바로 내가 원하던 사람이란걸 전적으로 확신해

And we had just begun 그렇게 우리는 막 시작했지

 

We got hitched in September, our favorite month 우리는 9월에 결혼했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달에

With a rock band that played in this old synagogue 오래된 시나고그[각주:3]에서 록밴드가 연주했지

And we bought an apartment on West 17th Street 그리고 우리는 웨스트 17번가에 아파트를 샀고

And talked about children and getting a dog 아이들과 개를 키울까 하는 얘기를 나눴지

 

Our first anniversary came in a flash 눈 깜짝할 새에 우리의 1주년이 다가왔어

And we promised to take the day off 우리 둘다 그날은 쉬기로 했지

He had to stop into his office that morning, and so 그 날 아침 그가 오피스에 들려야 해서

I went walking uptown to this bakery I know 나는 업타운에 있는 베이커리까지 걸어갔지

When I heard on the street what I thought was a joke 길가에서 들었을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Til I noticed the sirens and saw all the smoke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연기를 보고 말았어 

So I'm running back home with this feeling of dread 그래서 두려움에 휩싸여 집까지 달려오면

To the voicemail he left with the last words he said 음성사서함에 그의 마지막 말이 남겨져 있었어 

 

I'm sorry; I don't mean to ruin your evening 미안, 네 저녁을 이런 얘기를 꺼내서

By bringing up all of this stuff 망치려더건 아니였어

You're probably wondering why I even called you tonight 내가 왜 오늘 밤 불렀는지 궁금해하겠지

Well, today something happened that spooked me alright 그게, 오늘 나를 겁먹게한 일이 있었거든

I saw this storm cloud of papers fall down from the sky, 하늘에서 내려오는 종이 한 무더기를 봤더니

And I thought of that day and I started to cry. 그 날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했어

I discovered his Fruit Loops still there on the shelf, 아직도 선반에 있던 그의 후루트 룹스를 발견하고

And I cried, and I couldn’t get hold of myself 울기 시작했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말야

When as sure as I breathe I heard John clear as day 그러다 숨소리 너머로 틀림없이 존이

Saying, "Hey, you're allowed to move on. It's okay 말하는걸 들었어, "저기, 너는 이제 나아가도 돼, 괜찮아

 

Because I'll be here 왜냐면 나는 여기 있을께

Even if you decide to get rid of my favorite sweater 너가 내가 제일 좋아하던 스웨터를 치우겠다고 결심하더라도

Even if you go out on my birthday this year 너가 올해 내 생일때 데이트를 가더라도

Instead of staying at home 집에만 있으면서

Letting all of life's moments pass by 네 인생의 순간들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대신에 말야

You don't have to cry 울 필요 없어

 

Because I'll be here 왜냐면 나는 여기 있을께

When you start going back to the places we went to together 너가 우리가 같이 갔던 장소들을 다시 방문하기 시작할 때도

When you take off my ring and you let yourself smile 너가 내 반지를 빼고 스스로에게 웃어도 괜찮다고 할 때도

When you meet some handsome and patient and true 너가 잘생기고 참을성 있고 진실된 사람을 만날 때도

When he says that he wants to be married to you 그 사람이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할 때도

When you call him one night, and he meets you downtown 너가 어느날 밤 불러서, 그 사람이 다운타운에서 너를 만날 때도 

And you finally answer him 'Yes.' 너가 드디어 "좋아." 라고 대답할 때도

 

Yes, Jason, I will marry you 응, 제이슨, 너와 결혼할게

I will give you my heart 너에게 내 마음을 줄게

It has taken so long, but I'm ready to start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제 시작할 준비가 됐어

 

Right now, John's whispering "Congrats" in my ear 지금 존이 내 귓가에 "축하해"라고 속삭이고 있어

Cause I finally let myself tell you that I will be here 왜냐면 드디어 내가 너에게 여기 있겠다고 말했으니까

 

 

가사를 숙지하시고 읽어도, 들으면서 읽으셔도 좋습니다! Songfic 종류는 별로 써본적도 번역해본적도 없는거 같은데, 뮤지컬 장르 입문했으니까 앞으로 그럴 기회가 늘어날까요 제가 잘 쓴게 아니라 곡이 명곡인 겁니다ㅏㅏ

 

만에 하나라도 이걸 읽고 자캐들에게 관심이 생겼다면... 언제든지 썰을 풀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그 날도 이렇게 가랑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었어.

 

마트 앞 거리가 꽁꽁 얼어있었지. 한눈팔면 순식간에 미끄러질 정도로. 오리털 파카에 깊숙히 파묻힌 나는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얼음에 미끄러지는걸 봤어. 그 사람이 떨어뜨린 식료품을 주워줬지. 내 근처까지 날아온 알록달록한 후루트링 시리얼 상자가 눈에 뛰더라고. 너도 알지? 나는 아침식사로 시리얼보다 토스트 파인거.

 

쨌든, 상자를 주워서 건네주는데 그 사람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스쳤어. 추운 날씨에 장갑도 쓰지 않은 손은 차가워야 할텐데 신기하게도 온기가 느껴졌어. 크림을 잔뜩 넣은 핫초코의 색깔이었던 그의 머리에서 전해진 온기였을까. 

 

상자를 건네받으면서 내 미소가 정말 예쁘다면서 다정하게 말 건 그의 눈은 안경 너머에서 빛나고 있었어. 마치 초코칩 같았지만 쿠키에 잔뜩 박혀 있는 초코칩을 발견했을때의 신남으로 가득 차 있던건 오히려 그의 눈이었어. 사람 참 좋다고 생각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가려고 했는데 내게 말을 걸었어.

 

"저기요, 혹시 내일 뭐하세요?"

 

내일 7시에 머서 스트리트와 블리커 스트리트의 모퉁이에 있겠다고, 만나고 싶다면 거기서 기다리겠다고, 그리고 만약 두명 이상이 기다리고 있다면, 자신의 이름은 앤드루, 앤디라고 불러달라고 했어. 그리고 손을 한번 흔들자 사라졌지.

 

계속 얘기해도 돼? 아, 길가에 사람 별로 없으니까 상관 없다고? 그래, 고마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다음날 나는 그 모퉁이로 제시간에 맞춰서 갔어.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그 사람이 다시 와있을까 확인하러 같지. 모퉁이를 돌자 앤디가 거기 있었어. 처음 만났을 때보단 따뜻했지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가죽 재킷을 단단히 껴입고 있었지. 우리는 지중해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즐겼어.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던건 헤어지기 전에 나눈 키스였어.

 

그 다음 주에는 정말 끔찍한 뮤지컬을 보러 갔어.  글쎄,  남주인공이 극 중간에 죽더라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에 레 미제라블을 섞은 듯한 이야기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화장실이란 주제로 자본주의를 풍자하는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아니 애초에 제목부터가 꺼림칙했지만. 시간 되면 우리도 보러갈까?

 

그리고 그 다음 다음 주에는 하루종일 핫초코를 홀짝였어. 앤디의 머리색을 꼭 닮은 핫초코 말야. 나는 쓴맛 취향인데 앤디는 혀가 아릴 정도의 단맛을 좋아하더라. 전에는 핫초코에 마시멜로를 넣어본 적이 없었는데 앤디가 가르쳐 줬어. 마시멜로를 잘 구워서 초콜릿 조각과 크래커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스모어도 앤디가 처음 만들어줬어. 잘 녹은 초콜릿만큼이나 달달한 시간이었지. 그렇게 8-9개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어.

 

어느 날 앤디가 물었어.

 

“저기, 앞으로 평생 동안 뭐할거야?

 

내가 언제나 네 옆에 항상, 꼭 있을게. 몇달, 몇년, 몇십년동안이라도 네가 바라는 만큼. 살면서 이렇게 간절하게 바랐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아. 유치하게 들릴지 몰라도 내가 평생동안 찾은, 영원히 함께하고픈 사람이 너란걸 확신해.”

 

그렇게 내 인생은 새로운 장을 맞이했지-

 

우리는 9월에 결혼식을 올렸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었거든. 그대로 라울 ‘롤리’ 거트리여도 라울 레베르가 되어도 상관 없었어. 그냥 맺어졌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뻤던 것 같아. 웨스트 17번가에 있는 아파트를 구해서 아이는 몇 명, 개는 몇 마리 키울까, 하루하루를 그런 얘기로 보내다가 시간 가는줄도 몰랐어. 그저 앤디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좋기만 했어. 꿈만 같은 시간이었지. 

 

어느새 1주년이 눈 깜짝할 새에 다가왔어. 그날은 우리 둘다 일을 쉬기로 했지. 앤디가 오피스에 두고온 걸 챙기려 갈 동안 나는 업타운의 베이커리에 갔어. 집 근처에 초코 크루아상을 기가 막히게 굽는 곳이 있거든. 지난번에 가져온 에클레어도 그 집 꺼야! 어쨌든, 그날도 빵을 한가득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지.

 

…응? 아니, 괜찮아. 우는거 아냐. 계속 얘기할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졌어. 갑자기 조용한 길거리를 뒤덮은, 맨해튼에서는 듣기 힘든, 그것도 지나치게 큰 비행기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 도시를, 아니 전 세계를 뒤흔든 폭발음.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붉고 검은 불길과 연기. 이내 물밀듯이 달려오는 사이렌 소리.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오열하며 주저안고, 비통에 서로를 껴안고, 수군대는 소리. 

 

갑자기 세상이 멈춘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어. 시청각적 충격에 압도당해 무너져 내릴것만 같았어. 천년같은 10초가 흐른 뒤에야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어. 거짓말이었으면, 잔인한 장난이었으면, 악몽이었으면. 그래, 이건 꿈이야. 내 인생을 질투한 악마가 악몽을 꾸게 만든거야. 꿈에서 깨면 우리의 1주년 아침일거고, 포근한 이불에 파묻힌 채 앤디의 품에서 깨어날 거고, 내 기척에 일어난 앤디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거고, 너가 죽는 악몽을 꿨다고 하면 웃는 얼굴로 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면서 나는 절대 너를 두고 사라지지 않겠다고 말하겠지. 

 

그런데도 끔찍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어서 계단으로 달려갔어. 몇번이고 미끄러지고 구를뻔했는지 몰라. 그래도 상관 없었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열쇠를 꽂고 현관문을 열었을때 신발 한 켤레의 부재를 발견하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 봉투를 떨어뜨리자 빵이 바닥에 나뒹구는걸 무시하고 음성사서함을 확인해 봤더니

 

 

 

앤디의 마지막 말이 남겨져 있었어.

 

 

 

……아, 미안해. 우울한 얘기로 저녁을 망치려던건 아니였는데. 그럼 내가 왜 불렀냐고?

 

그게, 오늘 있는줄도 몰랐던걸 발견했어.

 

천장에 후루트링이 아직도 있더라고. 그걸 보자마자 무릎부터 무너져 그대로 주저 않았어. 그때 울다 울다 지쳐서 나오지 못한 눈물까지 쏟아서, 미친 사람처럼 오열했는데, 어느 순간 앤디가 속삭이는 소리가 처음 만난 날의 하늘보다 맑게 들렸어.

 

지금부터 너의 인생을 살아도 된다고. 

 

이젠 괜찮다고. 자신은 언제나 옆에 항상, 꼭 있을테니까. 자신이 제일 좋아하던 스웨터를 치우겠다고 결심해도, 올해 자기 생일때 데이트를 가도, 집에 있으면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계속 인생을 살아가도, 울 필요 없다고. 

 

우리가 같이 갔던 장소들을 다시 방문할 때도, 손에서 반지를 빼고 그날 이후 처음으로 웃어도, 자신만큼이나 다정하고 끈기 있고 진실된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할 때도, 너가 어느날 밤 그 사람을 불러서 다운타운에서 만나자고 할 때도, 그래서 그 사람이 오고 너가 마침내 좋다고 할 때도-

 

잠시 통화를 멈추고 거리를 바라보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그녀가 보여.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은은하면서도 환하게 빛나는 금발은 앤디의 미소만큼이나 밝아. 그런데 평소엔 햇빛을 받으면 그 무엇보다도 찬란하게 반짝이는 페리도트빛 눈은 축축하게 젖어있어. 마지막 몇분동안은 울면서 온 걸까, 아니면 눈물에 눈발이 섞인 걸까. 한껏 상기된 뺨도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감정이 북받쳐 오른 걸까. 그렇다면 그 감정은 생각조차 못 한 슬픔일까, 아니면 숨길 수 없는 감격일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를동안 나는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닦아줘. 마치 앤디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공기가 진정되면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쳐. 지금까지 나눈적이 없는 감정이 타오르고 있어. 쌀쌀한 날씨를 이 새로운 느낌이 따뜻하게 데우고 있어. 

 

그때는 내가 받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엔 내가 주는 입장으로. 양손으로 차갑게 식은 그녀의 두 손을 데우다가, 왼손을 가볍게 감싸고, 며칠동안 코트 주머니를 차지하던 그것을 쥐고서- 

 

“우리, 결혼하자.

 

내 맘을 줄게. 오래 걸렸지만 다시 시작할래.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된 거 같아. 그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 남은 내 삶을 너와 함께하고 싶은 것 같, 아니, 함께하고 싶다는걸 확신해. 그러니까

 

레이, 레이첼 녹스. 레이첼 거트리가 되어줄 수 있어?”

 

며칠동안, 어쩌면 몇달 아니 몇년동안 꺼내길 망설인 그 질문을 마침내 던지고서, 상자를 열면 녹색 보석으로 장식된 금반지가 반짝여. 마치 지금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터뜨린 레이의 얼굴처럼. 그 미소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해. 말은 필요 없어. 우리는 서로를 와락 껴안고선 더욱 뜨거워진, 앞으로 평생을 함께하게 될 온기를 나눠. 

 

지금 앤디가 “축하해!” 라고 귓가에 속삭이는게 들려. 내가 드디어 너에게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언제나

 

네 옆에 항상, 꼭 있겠다고 말했으니까.

 

 

  1. 뉴욕의 슈퍼마켓 체인. [본문으로]
  2. 켈로그의 시리얼. 한국에서는 후루츠링이라 부르지만 80년대에는 원어판처럼 후루트 룹스라고 불렀다네요. [본문으로]
  3. 유대교의 사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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