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어, 라는 말을 오늘도 삼킨다.
단간론파가 끝난지도 벌써 6개월. 나 초고교급 탐정 사이하라 슈이치는 극악무도한 살인게임 엔터테이먼트 단간론파를 끝내는데 성공했다. 아, 이제는 ‘전’ 초고교급 탐정인가? 뭐 어때. 초고교급 타이틀을 가진 단간론파의 생존자는 내가 유일한데. 이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을 미래의 초고교급들을 위한 기프티드 제도가 실시될 것이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는데…
한때 사이슈 학원이 서있던 자리에는 풀이 무성했다. 희망을 포기함으로서 이겨낸 절망은 그렇게 세월의 파도에 부서져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다. 그러면 희망도 사라지냐고? 글쎄,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1)절망은 사라지는게 아니라 그때마다 다른 형태를 취할 뿐이고 2)다행히도 절망이 존재하는 한 희망도 존재하고 3)우리는 항상 절망과 희망의 싸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정도. 그렇지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미래도 아닌 ‘진리’를 선택했으니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눈을 감으면, 철장에 둘러싸인 사이슈 학원이 내 앞에 서있다.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바다를 향해 꺾인 절벽 위에는 단풍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고 저녁마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밤에는 하늘에 부서져 내린 은하수를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다. 그 단풍나무 밑에는…이 모든것을 가능케한 나의 동기들, 사이슈 학원의 마지막 재학생 15명이 잠들어 있다. 최대한 벌레를 밟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덩굴로 뒤덮인 오솔길을 따라 그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안녕, 카에데.”
이곳은 그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장소. 그리고 나는 그곳의 유일한 방문자.
시간이 생길때마다, 사건이 뜸할 때마다, 누군가의 생일 때마다, 갑자기 보고 싶을때마다, 모든것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때마다 그 나무는 한결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더이상의 살인게임은 없어. 내가, 내 손으로, 단간론파를 끝냈어. 대가로 모든것을 잃어버렸지만…
카에데. 거기는 어때? 더이상 아프지 않지? 이젠 더이상 서로 죽고 죽일 필요 없지? 아마미군이 여동생을 만났어? 오마군의 진심을 들었어? 유메노양이 챠바시라양을 다시 만났어? 하루카와양이 모모타군을 다시 만났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겠다. 지금 15명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나는 괜찮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희를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어.
너희를 다시 만났을때 진실을 말해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왔어. 죽고 싶어도, 그만두고 싶어도, 절망하고 싶어도, 포기하고 싶어도 너희를 위해 계속 나아갔어.
“유메노양이 우리를 전기톱 트랩에서 밀어냈을땐 진정한 공포에 얼어붙었어. 하루카와양을 편하게 보내줄땐 남자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의 나약함을 원망했어. 아마미군의 여동생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걸 발견했을땐 끊임없이 자책했어. 그날밤 15명이 꿈에 나타나 나를 원망했을때는, 정말로 죽고 싶었어. 그런데 수면제 16알을 삼켜도, 손목을 16번 그어도 나는 죽지 않았더라. 죽을 용기마저도 없는 나는 신에게도 버림받았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잘못 생각했어. 죽지 못해 살아가는게 아니라, 아직 죽을 수 없으니까 살아가는 거였어. 나는 아직 진실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 진실을 찾기 전까진 죽을 수 없으니까, 계속 살아가는거야. 그게 탐정이니까, 그렇지?
그녀가 대답대신 살짝 웃는 환상을 본 것 같았다.
“그렇게 찾아낸 진실은…허탈해질 정도로 간단해서,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되어 버렸어. 허망했어. 너희는 이러려고 죽은게 아닌데…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의 죽음을 잊지 않을거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모두를 내보내려 했던 사람, 몇번이고 모든것을 멈추기 위해 발버둥쳤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 자신마저도 진실을 잊을 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짠 사람, 모두…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침묵. 침묵이 오후 햇살에 부서져서 하나의 음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노래다. 바로 ‘진리’를 노래하는 화음이다.
“나, 내일 영국으로 떠나. 부모님을 따라서…새로운 희망과 절망의 사건을 맡았어. 단간론파의 시작때부터 풀리지 않은 미제사건이라나. 절망을 이겨낸 초고교급 탐정, 나라면 해결할수 있을거라는데…정말 깨닫지 못한 걸까? 나는 절망을 이겨낸게 아니라 단순히 탐정으로서 진실을 추구한 것 뿐이란걸…
해결하는 즉시 돌아올 테니까, 선물도 사올 테니까…기다리고 있어줘, 알겠지? 너와 나의…약속이야.
아, 생일 축하해…카에데.”
하얀 장미 한송이와 금빛 오르골을 내려놓았다. 노래는 드뷔시의 ‘월광’. 우리들의 약속을 상징하는 바로 그 화음. 그 화음이 시간도 공간도 넘어서 바로 지금 우리들의 인연을 축복하고 있다.
“안녕, 카에데.”
다시한번 뒤돌아봤을때 분홍빛 환영을 본 것 같았다.
“안녕, 사이하라군.”
하얀 장미 한송이의 꽃말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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