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6354460/chapters/38268896

Happy birthday, Karoru!! Hope you have the best day ever!! Will this be an acceptable B-day gift?

Also credits to Shao; your magnificent pieces of art couldn't do better job to capture the atmosphere!

원제는 Wisteria-Loss. 


위스테리아-등나무의 꽃말은 '사랑에 취하다'! 크으으

등나무 등藤자는 일본 성씨에서 자주 볼수 있는 한자인데, 예를 들면 사이토斉藤라던가......정답입니다. 겐타로 성우분 사이토 소마斉藤壮馬님의 성과 똑같아요. 혹시 여기서 영감을 얻으신 건가요 작가님!!! 

작가님 왈, 불신의 기색을, 특히 어느 특정...한 장면에서, 놓치지 말고 읽어주세요. 무슨 의미인진 직접 확인해보세요! ^^ 


반점남발 만연체 꼭 써보고 싶었어요! 가독성은 희생당한 겁니다 유메노 작가님의 평소 문체가 궁금한 사람 1호. 물론 작가님은 챕터마다 문체를 바꿔써도 가독성에 전혀 문제가 없는 금손님이시겠죠......

이번에는 기나긴 수식어+반점+(수식어 곱빼기+주어+동사) 형태, 현재:과거=7:3 비율로 섞인 시제 정도...라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만약 브금을 깔고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중간에 걸린 링크를 클릭하 우타프리 미카제 아이의 Winter Blossom 피아노 버젼이 나옵니다.

자연스럽게 기사를 찾아 봤는데...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전 그걸 몰랐지... 호기심으로 죽인 고양이만 몇마리일까......

작가님?????작가니이이이이임?!??!!???!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선사하신 거죠?!!??!!!??

히 가사를 여기 실어서 맴찟을 공유한건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전혀 죄송하지 않지 않지 않습니다

저는 작업 도중 나카무라 유이치中村悠一의 벚꽃을 들었고...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앵슷 분위기를 연성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독제독以毒制毒!


보통 ‘아이’라는 이름은 여성형 이름이지만,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청년군 이미지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하셨어요

'아이'가 이름 アイ, 사랑 愛, 슬픔 哀, 희미함 曖, 어린아이 할때의 아이, 인공지능 AI 등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서 언어덕후는 신나게 고통받았습니다

‘아이’시테루와 ‘다이스’키와의 말장난도 노렸다고… ((막간 치명타


용한 방 안, 하얀 커튼에 스며드는 노을은 회색 벽을 밝힌다.

안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두꺼운 커튼으로 나눠진, 형형색색의 기계들. 반대편에는, 모두 한 화가가 그려낸, 거의 십년된 작품 모음. 그리고 한구석에는, 익숙한 이름이 표지에 새겨진, 두께가 제각각인 책 한무더기.

리고 모든 것의 한가운데, 작가가 홀로 있다. 창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부드러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랑거린다. 하지만 칠흑같이 어둡고 흐리멍텅한 눈을 한 작가 본인은 조각상마냥 움직이지 않는다. 그 옆에서 빈 침대에 햇살이 스며든다.

차갑고, 꾸물거리는 공기 중에서, 고장난 축음기처럼, 마치 이미 오래전에 시간선에 아로새겨진 것을 간절히 바꾸려는 듯이, 기억들이 반복된다.

청명한 하늘의 아침이었다. 익숙한 카페에서, 멍하니 앞에 놓여진 종이를 가로지르는 펜에서 겐타로는 안식을 찾는다. 직원들이 자신을 알아볼 정도로 자주 방문했던지라, 아기자기 꾸며진 한 구석에서 프라이버시를 만끽할 수 있는 친절을 받곤 했다. 인정하건데, 여기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걸 즐겼다-이곳의 공기는 자주 부드러운 산들바람처럼 느껴져서, 평소와는 다른 날숨을 내쉴수 있고, 마치 새로운 이야기의 씨를 뿌리는 것마냥 춤추며 주변을 맴돈다. 겐타로에게는 평소와 별다를것 없는 날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거란걸 확신해서, 그 생각에 입가에서 피어나는 미소를 손가락 뒤에 숨긴다.

그순간 핸드폰의 진동을 느꼈다. 화면에 뜬 번호는 처음 보는 번호여서 처음에는 무시했다. 하지만 발신자는 고집스럽게도, 연속으로 화면에 불이 들어오게 해서, 결국엔 전화를 받았다.

“유메노 겐타로 선생님이십니까?”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문직의 저음과 흡사해서, 차분하게 말을 계속하는데도, 겐타로는 발신자의 목소리에서 새어나오는…또다른 무언가를 어렴풋이 느낀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쳐 내면서, 답변 몇마디를 내뱉는다.

“…테이카 종합병원 입니다.”

벌써부터 반쯤 아득해지는 의식 너머로, 겐타로는 의사의 첫 마디를 놓쳤지만, 곧바로 이어진 다음 몇마디는 고통스러울만큼 똑똑히 들렸다. “지금 당장…병원에 오시는 편이 좋을것 같습니다. 아이 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 문장의 의미를 겐타로가 이해할동안 숨막히게 기나긴 시간이 흘렀지만, 비로소 깨달은 순간, 세계가 멈춘다. 머릿속에서 그 단어들이 반복될 동안, 주변이 흐리멍텅하게 흐려져서, 쓰라린 고통과 잇따른 공포의 파도만이 남는다.

이제 손이 덜덜 떨려서, 핸드폰을 쥐는데 애를 먹었지만, 강제로 호흡을 안정시키고, 의사선생님께 침착함과 유사하기만을 바랄수밖에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두 발은 이미 걸음을 옮겨서 카페를 떠났다. 흩어진 원고를 두고 떠나자 여직원이 부르는 소리가 아득히 들렸지만, 이내 곧 머릿속에서 째깍이는 시계 소리에 묵살당한다.

수없이 방문했던 방의 문을 드디어 열었을땐 전혀 숨을 쉴 수 없었다. 친구의 침대를 에워싼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겐타로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침대 곁에 다가가자 순식간에 흩어진다. 남아있던 의사중 한명이 방을 나서기 전에.겐타로에게 다가갔는데, 입술의 움직임을 똑똑히 읽고, 통화 도중 들은것과 똑같은 목소리라는걸 눈치챌수 있었는데도, 겐타로는 귀를 먹먹하게 하는 침묵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겐…

뼈에 사무치게 익숙한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서 침묵을 깨뜨린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주체할 수 없었던 눈물에, 두 뺨이 더럽혀진걸 깨닫는다.

“난 정말 최악의 친구야…오늘은 정말…최악의 날이네, 너한테 이런 짓을-” 아이는 입을 열었지만, 그순간 터져나온 기침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웠다-

즉시 곁으로 달려가서, 떨림에 몸이 무너져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울부짖다시피, 말들을 내뱉는다. “ㄱ…곧 있으면 나아질 거라고 했잖…!”

“미안해…”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은, 그동안 봐왔던것보다 훨씬 창백했고, 작은 웃음에 섞여 나오는 목소리는, 겐타로가 익숙해진, 지나치게 익숙해진 활기가 더이상 담겨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그건 거짓말 이었어, 하하. 나쁜 버릇도 옮았나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 내고, 겐타로에게 희미하게 웃어보이자, 답변 대신 떨림을 억누를 수 밖에 없다.

“저기, 겐? 이기적인 부탁,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도 될까?"

가냘픈 손을 꼬옥 쥐자, 무언가가 손바닥을 누르는 감촉이 희미하게 느껴지지만, 한데 엮인 손가락의 틈새로 한기가 기어들어 올것을 두려워해서, 절대 손을 놓을 수 없다.

그 순간 수만개의 바늘이 심장을 찌르지만, 그래도 미소로 맞이하자, 나오는 목소리는 놀랄만큼 침착했다. “…물론이죠. 무슨 일이라도 해줄수 있어요.”

안도의 한숨이, 행복과 섞여서, 아이의 입을 떠나자, 겐타로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전에 시작한 이야기 마저 말해줘. 그 패션 디자이너 하고… 이상한 갬블러가 나오는 이야기 말야.”

틀림없이, 틀림없이, 그것 말고도 더 있을 텐데-

“지금은 이야기해줄 시간이-”

입술에 손가락이 약하게 맞닿자 말은 끊긴다. “겐. 나는 아무리 짧은 이야기라도…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어. 그리고 최고의 친구가 침대맡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보다…완벽한 해피엔딩이 있을리 없잖아?”

타로는 답변 대신 픽 웃을수 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늘 그랬듯이 시적인 건가요…?”

겐타로가 망설일 동안, 찰나의 순간 다시 생명력을 되찾은 것처럼, 아이는 겐타로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힘을 실어서 덧붙인다. “제발.”

둘의 눈이 마주친 그순간, 할 수 있는건 단 한가지 뿐이라는걸 알았다. 미소가 피어나서, 손가락이 움직여 머리카락을 걷어내자 드러나는 눈은, 그 무엇보다도 매혹적이어서, 시간이 흐를동안 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알겠어요.”

그러자 아이가 지은 미소는, 신체의 병약함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그 어떤것보다 찬란해서, 그 순간동안 중요한 유일무이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밤하늘의 수많은 별보다도 훨씬 많은 비밀을 품은 분홍 머리의 명랑 쾌활한 패션 디자이너와, 스릴을 위해서 자기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훨씬 중요히 여기는 무모한 갬블러의-이번에는 진실된-이야기를 자아낸다.

언제부터 시야가 완전히 흐려지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눈물에 옷과 두 뺨이 젖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숨막히는 울음을 삼키려 했지만 실패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목이 메어오고, 가슴이 옥죄여 오더라도, 절대 멈출수 없어서, 주변 기계가 연주하는 불안정하지만 율동적인 선율과, 매초가 지날수록 점점 부자연스러워지는 호흡과, 겐타로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말해줄 이야기가 떨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하고, 끝에 다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말하다가, 몇시간이 흘렀는지, 몇번을 반복했는지, 시간의 흐름을 망각했지만, 감긴 눈꺼풀 너머로 빛이 사라지는걸 바라보면서, 무거운 마지막 숨결이 허파를 떠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순간 겐타로는 단 하나만을, 입가에서 절대 바래지 않은 희미하면서도 찬란한 미소를 기억했다.

희미한 생명의 선율이 하나의 음색으로 흐려지더니, 침묵만이 남는다.


텅 빈 침대 곁에서 몇시간을 떠나보냈는지 겐타로는 모르지만, 결국엔 조용한 목소리로 애틋하게 위로하던, 무시하려 했지만 이내 실패한 동정이 서린 눈길의 간호사가 병실 밖까지 데려다 주었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무겁게 가슴을 짓눌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이미 과거에도 수십번은 드나든 길이지만, 보도에 발이 닿을 때마다, 만약 생각을 정처없이 떠돌도록 내버려둔다면, 어떤일이 일어날지 두려워서, 걸음에 집중한다. 가로등이 흐릿하게 거리를 비추고, 시나브로 기온이 오르자 생명의 마지막 가닥을 꼬옥 붙든 벚꽃의 분홍빛 바다가 깔린 길이 눈에 들어온다.

일년에 단 한번 피어나는, 기적적인 생명의 흔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세계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차 잊혀지게 될 덧없는 영혼들의 유품을 품은, 죽음의 정원이라고도 충분히 부를 수 있으리라.

마치 하나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그리고 이미 겐타로는 자신이 어느 면에 위치해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발이 스스로 걸음을 옮겨서, 의식은 두서없이 방황하는데도, 어느덧 현관 문 앞에 다다랐다. 문의 나뭇결을 관찰하느라 뜸을 오래 들였지만, 결국 두 손은 작은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열쇠를 넣지 않았는데도 이미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도, 문의 반대편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아 젠장”도, 둘다 눈치채지 못한채, 겐타로는 문을 밀어 연다-

밝은 빛에 갑자기 시각이 압도당한다. 거기에 덮쳐오는 불꽃놀이 같은 소리가, 즉시 폭죽이라는걸 알아차린다. 알록달록한 종이조각의 비에 파묻힌다.

“생일 축하해!”

몇 초가 지난 후에야 겐타로의 두 눈은 깜박여서 초점을 되찾는다-하지만 시야를 조정하기 전에도 익숙한 파란색과 분홍색 머리가 언뜻 보인다. 이제 싱글벙글 웃는 다이스와 라무다가 눈에 들어온다. 그순간 다이스가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주인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강아지마냥 가상의 꼬리를 신나게 흔드는걸 누구라도 똑똑히 목격했으리라.

그제서야,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해낸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소생은 행복해요.'

그러나 유메노 겐타로는 수려한 말쏨씨를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말해야 하는 예문들이 넘쳐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그순간, 단 한마디의 거짓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대신, 진실과 거짓의 진퇴양난에 사로잡혀서, 겐타로는 단순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은 금이라 했던가, 그렇지만, 대답의 부재가 단순히 충격이나 놀람의 부작용이 아니라는걸 동료들이 눈치채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방의 공기가 즉시 바뀌어서, 마치 모든게 환상이었던 것처럼, 축하하는 분위기가 팀 동료들의 미소와 함께 녹아 사라져서, 또다른 죄책감의 압박으로 일그러진다.

“야, -겐타로?”

먼저 다이스가 입을 연다. 평소에는 활기차던 목소리가 걱정에 휩싸인건,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증폭시킬 뿐이다. 밝은 민트빛 눈이 곁에서 겐타로를 지켜본다. 비슷하지만,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서린 표정을 지은 라무다와 눈이 마주친다.

다이스가 계속해서 부르고 있다는걸, 겐타로가 마침내 눈치채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다. 마침내 대답을 내뱉을 목소리를 가까스로 되찾았을 때에는, 기껏 입에서 떠나자마자 떨리지 않도록, 모든 집중력을 한데 모아야 했다.

“...네?”

둘의 머릿속을 온통 한 질문이 차지한게 너무나도 명백해서, 기력없는 반응을 바라보는 두 쌍의 눈은, 딱히 입을 열지 않더라도 생생히 의문점을 전달하지만, 개의치 않고 다이스가 직접 물을 기회를, 기다렸다는듯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 밖에 내기를 허락한다.

“무슨 일 있었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에게서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는 질문이지만, 가장 직설적인 돌직구를 날리곤 하는 다이스의 경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빈틈을 논파하는데 성공한다. 안식을 울부짖고, 어깨의 무거운 짐을 이제 그만 내려놓기를 갈구하는 유치한 면과, 여전히 고집스럽게, 그것밖에 할 줄 아는게 없으니까, 자신이 지어온 견고한 벽을 사수하려는 면 사이에서 갈등이 피어난다.

두 면이 충돌한다.

…그러자 두려움의 구름이 몰려와서, 어느 한쪽도 이기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는 공포에 압도당해서, 겐타로는 갈등이 자연스럽게 풀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러도록 늘 예행연습 한것처럼 밀쳐낼 뿐이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소생은 괜찮은데요.”

여전히 목소리는 침착하고, 평소의 자신에 대한 모든 ‘평범한’ 건-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래야만 하지만-그럴싸해도, 그걸 인증하는 순간에도, 실은, 입 밖에 낸 순간에도, 여전히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이스와 라무다에게선, 눈 씻고 찾아봐도, 일말의 반응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자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겠다고 위협한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진실성을, 마지막 한톨뿐만이라도 좋으니까, 처절하리만큼 필사적으로 사수한다.

...불행히도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ㅈ…죄송해요, 둘다.” 떨림이 기어오른다. 멈춤과 망설임 사이로 단어들이 흘러나온다. 무력하고, 노출되고, 평소에 쓰던 가면이 떨어져서, 산산조각 난걸 필사적으로 다시 붙이는 것만 같지만, 기적적으로 계속 기능하는 자신의 현 상태의 위태로움을 잘 알기에, 여의치 않고 계속한다. “소생은…마음은 고맙지만, 오늘을 혼자 있었으면 하네요.”

현 상황에선 걱정될 수 밖에 없는 부탁이란걸,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어서, 라무다는 눈썹을 찌뿌린다-

“겐타로~?”

마치 라무다가 입을 여는게 신호였던 것처럼, 다이스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겐타로에게 다가간다. 찰나의 순간 동안, 겐타로는 신체적 접촉을 환영해서, 최소한 누군가의 온기 안에서 일시적인 안식을, 위로를 받기를 거의 갈구했지만-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을 가능성을 고려한 것만으로도 자책한다.

다시 입을 연 다이스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진정되고, 위험할 만큼 위안이 된다. “우리가 해줄 수 있-“

“지금 둘이 해줄 수 있는건 없어요. 아무것도요. 그냥… 소생을 내버려 두세요.”

둘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또다른 죄책감의 파도에 휩쓸려서, 친절함에 분노와 불만감으로 대응한걸, 심장이 대신 벌을 내린다. 이제 눈가가 따끔거리는게 느껴지지만, 겐타로는 입술을-피맛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잘근잘근 씹어서, 쏟아지겠다고 위협하는 감정의 파도를 다시 억누른다.

공기가 잔잔해진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미 무너져가는 벽에 파도가 부딪혀 부서질 때마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 같다.

이제 입 안에서 쇠맛이 느껴진다-무딘 고통이 배어나오더니, 그 순간, 이제 그만 놓아주려는 것처럼, 드디어 다이스와 라무다가 이해한다는 듯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걸 곁눈질로 슬쩍 보았다. 어깨에 가볍게 손이 닿자, 온몸으로 억눌린 전율이 퍼지지만, 겐타로는-누가 보면 죽었다고 착각할 정도로-가만히, 뒤에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도 그대로 있었다.

후퇴하는 발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지만, 이내 귀를 멀게 하는 침묵이, 본인의 위태롭게 떨리는 숨결에 깨지는 소리만이 귓가에 맴돈다.

의식이 다시 연결되고 몸이 작동하기까지 몇 초가 더 지난다. 머리 위에 자리잡은 잔머리카락을 집는 동안, 겐타로는 손가락 사이에 꼬옥 쥐어진 종이의 존재를 비로소 자각한다. 이제 기억이 다시 돌아온다: 마지막 대화를 나눌 동안 아이가 조용히 손에 쥐어준, 그동안 내내 잊고 있었던 편지다.

떨리는 손가락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갑작스런 움직임에 즉시 구겨지고 재가 되어 사라질걸 두려워하면서, 편지를 연다.

다소 느리게 진행된 작업이지만, 마침내 펼쳤을 때엔, 스케치의 첫 선이 눈에 들어온다-아이는 자주 겐타로가 말해준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수많은 캐릭터들을 종이에다 그려내곤 했지만, 이 낙서는 생각보다 단순했다-그저 아이와 겐타로, 그리고 둘 사이에 딸기 쇼트케이크-특별한 날에 같이 먹으러 가자고 약속했었지-가 있는 그림. 화가가 한창 그리던 도중 생각을 바꾸기라도 한것처럼, 연필선이 갑자기 흐려져서, 뻗어나가는 선을 눈으로 쫓다가, 왼쪽 아래 한구석에 작게 휘갈긴 글씨를, 너무나도 익숙한 글씨체를 눈치챈다:

한 이야기가 끝나면,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잖아.

우리한테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함께 보낸 모든 순간을 사랑했고, 나눈 모든 대화를 소중히 여겼어.

그리고 마음속에 너가 나를 위해 지어준 모든 멋진 이야기들을 간직했어.

더 긴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둘다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될거야.

내 해피엔딩은 너 덕분에 찾았어.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지 말아줘. 네 이야기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서, 너만의 해피엔딩을 찾아줘.


너는 항상 내가 어둠을 밝혀준 등불이라고 했지.

하지만 너도 나의 등불이었어.

너가 없었더라면 칙칙하고 고통스러웠을 나날에 색깔과 기쁨을 가져다 주었어. 너의 미소는 두번 다시 느끼지 못할거라고 생각한 온기를 가져다 주었어.

너를 만나서 정말 기뻐. 이건 평생 후회하지 않을거야.

다음에 만날 때도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고마워, 겐. 전부 고마워.

이미 편지의 끝에 다다르기 한참 전에 시선이 다시 흐려진다.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나고, 이런 것마저도 시적인걸 비웃고 싶어져서, 그러자 마지막 한가닥이 끊어진다: 안에서 자신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무언가가, 그순간 무너져 내린다-미쳐 눈치채기도 전에, 두 다리가 힘없이 풀린다.

단단한 마룻바닥에, 부서진 인형처럼 가만히 주저앉은, 겐타로의 피부 속으로 한기가 파고든다. 연결이 거의 끊어진 것처럼, 심장을 날카롭게 후벼 파는 고통이 머릿속을 온통 차지해서, 주변에서 다가오는 진동은 전부 거부한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 알록달록한 종잇조각, 맛있는 음식의 군침도는 냄새, 전부 한데 어우러져서, 따뜻한 친절을 보여준 동료-어쩌면 친구, 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두 사람을 생각나게 했지만…이제는 깊어져가는 공허함밖에 남지 않아서, 눈빛이 어둠에 물들어, 단 한점의 빛도 허락하지 않는 색으로 흐려진다.

그래서, 흑백의 세계에 홀로 남겨진 채, 울고, 계속해서 울고, 어느새 우는것마저 잊어버린다.


시계가 째깍인다. 하늘은 계속해서 수만가지의 빛깔로 번진다. 구름은 드넓은 파랑에 자리를 잡다가 때가 되면 흩어진다. 해가 뜨고, 지고, 모든 것이 반복된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그 순환을 몇번이나 계속했는지 겐타로는 회상하지 않는다.

월초에 마지막으로 만난 후, 한동안은 다이스나 라무다에게서 온 연락이 없어서-아니면 그저 깜빡이는 핸드폰 불빛을 무시하기로 한건지, 확실하지 않지만-무시는 한없이 자연스러웠다. 과분할 정도로 친절한 호의를, 매정하게 거절해서, 둘이 보여준 우애를 망쳐버리자-처음 있는 일도 아니잖아, 라고 조용히 생각하면서-아이러니한 미소를 짓고, 나같은 걸 상대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절대로 미친 사람밖에 없을거라면서, 사색에 잠긴다.

그래도, 자신을 키워준 노부부에게서 온 전화는, 받지 않는다면 더욱 걱정하실 테니까, 받았다: 위안되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말들을 건네셔서, 제한없는 환영을 갈망하는 이기심에, 겐타로는 집에 돌아와서 잠시동안 있으라는 제안을 거의 받아들인다-하지만 가면을 벗지도 떨어지게 내버려두지도 않아서, 너무나도 많이 연습한 미소를 곁들인채, 안심되는 답변만 남겼다. 지금까지 갚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은혜를 입었으니까, 이미 무거운 어깨에 또다른 짐을 얹을 필요는 없겠지.

나중에서야, 화면이 검은빛으로 흐려지는걸 바라보면서, 놀랄만큼 간단한 일이었다는걸 깨닫는다-물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란걸 고려해야 하지만서도.

하지만 그 말은 가장 많은 거짓말을 한 사람들이란 뜻이란것도 곧바로 기억해낸다.

이제 시선은 벽에 걸린 작은 달력으로 옮겨져서, 빨간 동그라미가 거칠게 그어진 날짜에 집중한다. 기한은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을, 모든 것은 언젠가 끝에 다다른다는 진실을 일깨워준다-

부딪혀 무너지는 공포의 파도를 밀어내고선, 다시 기어오른 잡생각들을 파묻는다. 거의 본능적으로, 손은 근처에 있는 펜을 찾아 움직여서, 손가락에 묻은 빨간색과 하얀색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치 써내린 모든 단어가,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 모든 고통 한방울이, 무너져내려가는 벽을 붙들고 있을거라고 믿는것처럼, 펜을 꼬옥 움켜쥘 뿐이다.

조금만 더 오래 이 동화속에 빠져 있어도 괜찮을까.

시계는 째깍이고, 손을 거의 리듬에 맞춰서 까닥거리자, 펜은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며, 생각은 눈앞에 보이는 글자에만 집중한채, ‘그들’을 위한 마지막 동화를, 피곤한 것도 잊고 자아내다가, 현실의 마감 시간을 맞춘다.

기한이 다가오기 전에 최소한 해피 엔딩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몇번이고 그렇게 빌었건만, 그 날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해는 지평선을 깨고 올라와서, 햇빛은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스며들고, 목숨줄을 쥐고 있던것처럼 꽈악 져서, 욱신거리는 주먹을 드디어 피고, 떨어지는 펜과 함께 책상에 쓰러지는 작가를 비춘다.

겐타로가 기절했다는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즉시 잠이 싹 달아나서 벌떡 일어나, 필수품을 챙기고, 엉망진창인 꼬락서니를 충분히 격식있을 정도로 다듬으면서,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방안을 뛰어다닌다-하마터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평상복을 꺼내 입을 뻔했다가, 달력 위 선명한 빨간색이 눈에 들어오자, 검은 옷을 꺼내 차려입는다.

머릿속은 온통 기진맥진 해서, 왜 서둘러야 하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흐려지지만, 책상 위 원고를 가지런히 정리할 동안, 거의 읽을 수 없는 글씨체가 눈에 들어와서, 공포가 돌아오는걸 자각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미소를 애써 억누를 뿐이다.

종이에서 단어를 짜내면 그 말이 그대로 이뤄질거라고 믿어서, 겐타로는 온힘을 다해서 종이를 쥐다가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긴다. 수작업을 하느라 방치해뒀던 두 다리는 격렬히 저항하지만서도.

두렵지만,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날.

살짝 숨이 찼지만, 그래도 제시간에 장소에 도착했을 때 겐타로는,  소생은 괜찮다면서 자기 자신을 거의 납득시켰다. 자동적으로 환영의 인사-몇개는 다른것보다 좀더 길었다-를 건네면서, 침착하고도 부드러운 미소의 가면을 쓴채, 안심과 격려를 단어 사이사이에 엮는다-

하지만 답변으로 비슷한 말들 대신, 감사의 말들을 받는다.

여러 ‘고맙다’는 계속해서 다가오고, 그러다가 마침내, 아이의 어머니와 얘기할 때, 몸이 덜덜 떨리는데도 밝은 미소로 맞아 주시는 친절한 분이셔서, 별 생각 없이 혀끝에서 걱정의 질문이 굴러 떨어진다.

“감사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은거 같은데요…”

문장이라기 보단 질문에 가까운 형태로 흘러나왔지만, 그래도 의도를 이해하신것 같아서, 고개를 저으시더니 곧바로, 미소가 살짝 바랬지만서도, 아까 전보다 훨씬 진심 어린 대답을 하신다:

“아니야, 겐타로… 아이를 웃게 해줘서, 고맙구나.”

왜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세게 치고 지나간 한마디.

머리 한구석은 단순히 허울뿐인 말일거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그 한마디는 자신을 붙잡더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깊숙히 파고든다. 잠시동안 할 말을 잃어서, 숨이 막혀서 목이 메어 온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뺨은 젖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지 않은 걸까.

나눌 말이 더이상 없을 때에야, 주변의 공기가 침묵의 안락에 잠겨서, 홀의 한가운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올때까지 무겁고, 불안정한 걸음을 옮기기 까지 마지막으로 남은 용기 한방울까지 짜내야 했다. 아이의 두 눈은 감겼고, 그 어떤 기억보다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어쩌면 피곤의 부작용일지도 모르지만, 입가에서 작은 미소가 피어나는게 언뜻 보인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자신을 깨워서 데려갈 운명의 기사님을 기다리는 동안 잠든 것처럼.

하지만 수많은 말들을 지어내고 비틀어서, 현실에 엮어낼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래도…진정한 사랑의 키스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수만가지의 ‘만약’과 ‘이랬더라면’과 ‘절대 일어날 수 없던 것’들 뿐. 그래도 약속은 영원한 법이고, 자신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져야 하니까, 찾는걸 그만둘 수 없다.

겐타로는 종이를 가지런히 접어서, 주변을 건드리지 않을려고 조심스럽게, 주머니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고선 그 순간이 허락한 만큼, 가능한 한 가까이 기대어, 정적에 숨을 참고선, 거의 들리지 않는 속삭임으로, 마치 친구에게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십몇년 된 둘의 이야기에 이별을 고한다.

“그 곳에선 더이상 고통받지 말고, 아프지 말고, 편히 잠들기를 빌게요, 소생의…친구.”

그 말이 혀끝에서 굴러떨어져서, 하마터면 이런 순간에 마지막 거짓말이 흐트러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다시 삼킨다-적어도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 딱히 다른 미련이 남은건…

겐타로는 작은 기침을 내뱉어서, 기침 소리에 생각의 고리를 끊고, 마지못해서 시선을 돌린다.

나머지 문상이 진행되고, 이어서 장례식이 거행될 동안, 차마 아이의 얼굴을 다시 마주볼 수 없었다. 기억에 활기 넘치던… 순간들만 남아 있기를 바라는건, 유치하고 불가능한 바람이란걸 알고 있었지만, 꼭 이뤄지길 간절히 바랬다-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을 둘러싼 검은 바다의 미세기에 휩쓸릴 동안엔, 이기적으로 굴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 상태로 얼마나 긴 시간을 흘러보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했지만, 묘지의 침묵 한가운데, 해가 서서히 회색 벽 너머로 사라질 동안, 산들바람이 불어올때에야, 수만번을 연습해왔던 미소를 드디어 벗어 던진다.

어느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것도 눈치채지 못한채, 하카마의 주름을 더럽히는 진흙은 무시하면서, 익숙한 이름 옆에 웅크린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고, 묘석 옆에서 춤추는 작은 촛불을 건드리지 않을려고 조심하면서, 얇은 종이를 펼치는동안 떨리던 손이 안정된다. 손에 쥔 것은 다름아닌, 두 친구 사이의 약속이 자아낸 동화의 해피 엔딩이 담긴,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가로막혔지만, 몇번이고 계속해서,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왕자님과 공주님의 이야기.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그래도 약속했으니까.

촛불에 종이를 가져다 대니, 종이는 불길에 휩싸여 검은 재로 변해서, 화마가 자신에 단어를 집어삼키는걸 바라볼 동안, 열기는 예리하면서도 기묘할만큼 안심이 되는 온기를 발산한다. 행복해야 하는데, 만족과 안도의 파도가 몰려와 자신의 생각을 비춰서, 씁쓸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안에 담긴 말들은 마음과 영혼간의 정교한 균형을 이뤄서, 그 어떤것도 대신할 수 없는 힘을 가져온다.

틀림없이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리라.

하지만 수백 수천 가지의 만약의 마지막 페이지를 바라보자, 전생의, 현생의, 내세의 해피엔딩의 마지막 글자가…마음과 영혼을 쏟아부은 글자가,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소비될 동안, 불현듯 깨닫는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강한 힘이라 하더라도, 절대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왜 그말이 옳다고 믿었는지 이젠 모르겠다.


“……”


“…어째서?”




어째서 이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거지?


어째서 이 세상은 이렇게 잔인한 거지?


어째서 그렇게나 밝고 찬란하던 존재가 세상에서 뜯겨나가야만 하는 거지?


어째서 이 마음의 공허함을, 애초에 처음부터 아무 상관 없었다는듯이 사그라들거였으면, 채워야만 하는 거지?



“보고 싶어…” 떨리는 숨결 사이로 새어나가는 한 마디. 온 몸에 퍼져나가는 모든 떨림은, 그동안 필사적으로 무시하려 했던, 깊어져만 가는 외로움을 강조할 뿐이다.

바로 그 순간, 마치 겐타로의 현 상태를 비추듯이, 어쩌면 비웃듯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옷이 비에 푹 젖어,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더해져서, 이미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더욱 떨게 한다. 하지만 움직이려는 기색조차 내지 않고, 빗방울이 뺨의 습기와 섞이도록, 고개를 살짝 기울이기만 했다-만에 하나, 이 상태로 가능한 한 오래 있는다면, 고통도 비에 씻겨나갈 수 있는걸까.

하지만 비는 갑자기 멈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변에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다.

흐릿한 시야 너머, 무언가가 거무튀튀한 회색을 막아서, 초점이 점차 돌아오자, 다시 한번 익숙한 파란색과 분홍색이 눈에 들어온다-

“…여긴 어떻게…?”

질문을 내뱉으면서도 소매에 다시 얼굴을 파묻는다. 둘다 질문을 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지만, 둘 중 한명도 대답하지 않는다-대신, 억센 손과 가는 손이 어깨를 잡고, 품안으로 잡아당기더니 꼬옥 껴안아서, 그리워하던것도 잊어버렸던 온기에 둘러쌓인다.

그러자 말없이 인정하는 콧노래만이, 마치 겐타로에게 우리가 있음을 상냥하게 일깨워주려는 것처럼, 공백 내에 감돌아서, 어느덧 이미 오래 전에 부서졌어야 했을 둑에 마지막 금이 간다.

파도가 부서진다.

한참 동안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 임시적인 은신처 내의 둘의 존재에, 오직 고른 숨소리와, 떨어지는 빗방울과, 거의 하나되는 심장 박동만이 한데 어우러질동안, 겐타로의 흐느낌은 시나브로 소리없는 딸꾹질이 되고, 드디어 떨림이 멈춘다.

그리고 현실이 존재한다는게 여전히 고통스러울지라도, 이제 자그마한 온기가 퍼져서 공백을 채워나가기에, 본능적으로 안식을 찾아서 품 안으로 깊이 파고들동안, 영겁같던 시간동안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피어나고, 겐타로는 혼자가 아니라는걸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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