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4723534
Ao3의 glitchedmirrors님,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원제는 'Simple Steps'
또 최장기록을 갱신해버린건 저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4362 단어 공백포함 18399 공백미포함 14115...ㅎㅎㅎ
수상한 메신저 팬덤 첫 데뷔작(?) 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707 루트, 시크릿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림소설이라기 보단 2인칭 서술 소설에 가깝습니다. 본격 ‘여주’라는 단어 안쓰고 번역하기… 라는 도전과제 아닌 도전과제. ‘자기’라던가 ‘얘’라는 단어로 절충안을 확립했습니다. 세영이라면 이미 그렇게 부르고도 남았으니까. 이참에 이름/인칭대명사를 쓰지 않고도 말이 통하는 일상체 한국어에 경의를 표하겠습니다
그리고 최둥이와 여주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최둥이가 더 빠르다는 깨알 뇌피셜.
이번 번역의 핵심은 상황 묘사는 형용사의 기능을 하는 동명사+주어 위주, 하지만 여주가 엮이면 주어+현재형 동사 위주로 바뀌는 서술. 독자분들 무슨소리인지 이해 못하시겠지…?
왜 세영 세란이는 ‘ㅐ’가 아니라 ‘ㅔ’인데 ‘Se’가 아니라 ‘Sae’로 번역됐을까요? 제 이름도 ㅐ를 e가 아니라 ae라고 쓰는데. 아마 Seyoung Seran이라고 쓰면 검색했을때 동명이인이 많아서 그랬을까? 그럼 납득. Seran이라고 쓰면 한국보다는 일본 장르에 익숙한 양덕들은 일본식 이름이라고 착각했을수도 있겠다
작가님 본인의 공황발작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그라운딩Grounding이 메인 테마 같네요. 우울증이나 현실 감각이 사라져 갈때 하면 좋은 활동으로, 팬픽에선 약간 변경되었지만, 대부분:
의자에 편하게 앉는다
1 ~ 10 숫자로 내 감정 상태 확인하기 (숫자가 클수록 좋지 않은 것)
땅에 발, 의자에 등, 허리, 엉덩이가 붙어있는 걸 느끼기
눈에 보이는 사물 이야기하기
눈에 보이는 색깔 이야기하기
들리는 소리 이야기하기
향초, 향수 등의 향 맡기
초콜릿을 먹으며, 무슨 맛이 나는지, 무슨 느낌이 드는지 이야기하기
손, 발을 쭉 뻗으며 스트레칭하기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 그리고 그 호흡을 느끼기
호흡하면서 내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끼는 것을 떠올리기
*감정에 더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눈은 감지 않는다
이 순서를 따른다고 합니다!
세란이는 반드시 행복해질거고 세영여주(=형수님!)가 항상 옆에서 격려하고 응원할거예요오오오(행복회로 타는 소리)
조심스럽게 방을 훑는 민트빛 눈, 주변 상황을 인지하려고 하자 짧고 가쁜 숨을 내쉬며 헐떡거리는 세란이. 숨이 막히는 듯한 이 느낌이, 공기가 목을 졸라서 죽이려는거 같은 이 느낌이 왜 드는지 영문을 몰라한다. 지하 거실 한가운데서 무릎을 껴안고 웅크린다. 마치 자신을 현실에 붙들어 놓으려는듯이, 두 팔은 자신을 단단히 껴안는다. 소리지르지 않으려면 그것밖에 할 수 없다. 물론 이 순간 자신의 숨소리가 얼마나 이상하게 들리는지 알면서 그럴리는 만무하지만. 방금 전에 뭐하고 있었더라? 방의 TV도 켜져있지 않았는데, 세란이는 전혀 기억해낼수 없다. 방을 오래 비우는 적은 별로 없는데, 그래서일까, 이 느낌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일어나 앉을수도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이 막혀오자 한껏 웅크린다. 만약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수 있다면, 쌍둥이 형이 어딨는지 궁금해하겠지. 지금도 여전히 약한 모습 보여주는건 싫어하지만,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형이라면 두 손 걷고 자신을 도와줄거란걸 아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마저도 사라진다. 죽을 것 같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 적발의 소년. 숨이 너무 가파서 죄어오는 가슴. 익숙한 쓰라림과 함께 차오르는 눈물. 신이시여, 왜이렇게 아파야만 하는 건가요?
“세란아? 지금 어딨어?” 소리치는 세영이와, 형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흥분을 쉽게 눈치챈 세란이.
쌍둥이 형에게 대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목을 옥죄어 오는 흐느낌밖에 나오지 않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세영이 형이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발걸음 소리. 형의 발과 다리가 시야에 들어오자 고개를 들어서 형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오히려 두 눈은 꼭 감겨서, 차오르던 눈물이 드디어 흘러넘쳐서 더렵혀진 두 뺨.
“젠장. 세란아, 괜찮아?” 쌍둥이 형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 새겨진 걱정의 기색을 세란이는 놓치지 않는다. 왜 이게 지금 일어나야 되는거야? 민트 아이에서 구출됐을 때부터 들러붙던 세영이 형이 드디어 떨어졌는데, 세란이는 그 모든게 반복될거란 예감이 든다.
“아니...” 쌕쌕거리며 새어나오는 답변, 다시 헐떡이는 호흡. 양팔을 더 꽉 껴안을수록 부들부들 떨리는 연약한 몸. 살을 파고드는 손톱.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그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몇번이고 계속해서 입에서 쏟아지는 그 말. 갈수록 더 절실하게 들리는 바로 그 말.
세영이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황파악 하기 전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동생이 공황 발작을 겪고 있고, 세란이가 바닥에 붙어 꼼짝도 못하는 걸로 판단하건데, 정말 지독한 발작이다. 전에도 이랬던 적이 없는건 아닌데, 너가 어떻게 하면 된다고 말해준게 분명 있었는데? 다시 제정신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데? 세란이를 바라보는 금안 한 쌍. 무언가를 기억해내면 즉시 머릿속을 떠나버린다. 이런 상태의 쌍둥이 동생을 보자니 정말 마음아프다. 특히 이렇게 심한 발작은 기억에 없으니까 더더욱. 아니면 있었지만 어땠는지 까먹은 걸까? 어쨌든간에, 세영이는 세란이를 이렇게 내버려둘수 없다는걸,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걸 잘 안다.
“세란아, 다른데 가지말고 여기 있어. 나... 우리 자기 데리고 올게. 나는 몰라도 자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거야, 알았지?” 본인의 불안감이 증폭될수록 덩달아 높아지는 목소리. 세란이 대신 그 고통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지만서도, 자신보다는 너의 도움을 받는게 더 낫다는걸 알고 있다.
세란이가 들을수 있는건 형이 걸어가는-아니, 달리는-발걸음 소리 뿐. 너가 어떻게 도와줄수 있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쌍둥이 동생. 실은 쌍둥이 형과 같이 살고 있지만 아직도 너를 믿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건 싫어! 그 생각에 복통과 현기증이 몰려온다. 또다시 들리는 흐느낌과 신음소리. 이제 더 격심해진 울음과 함께 찾아온 경련.
세란이가 민트아이에서 구출된것도, 세영이가 병원에서 세란이를 빼낸것도 거의 1년 전, 몇달 전의 이야기. 하지만 민트아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곳에서 받았던 벌이라는 이름의 폭력. 가끔은 숨이 막힐 정도로 격렬하게 쏟아지던 구원의 약. 때로는 도로 토해내기도 했지. 끔찍했다. 다시 아파오는 배. 목구멍 뒤에서 차오른다고 확신할 수 있는 메스꺼움. 눈을 꼭 감은채 도로 삼킨다. 이대로 악화되도록 내버려둘리 없잖아. 이제 그 나날들은 그만 생각해야겠다…
천만다행히도 형이 무언가를 소리치는게 들린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다. 모든 소리가 흐리멍텅 해진다. 희미한 외침 외에도,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멈춘 것 같은 뇌. 이제 더이상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없다.
너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모른채 방까지 남자친구한테 이끌려 온다. 끌고 오기 전에 세영이가 말할 수 있던 단어는 “세란이” 뿐이어서, 쌍둥이 동생에게 일어난 일이란건 짐작 갔지만, 직접 보기 전까진 확신이 든건 아니다. 마룻바닥에 웅크린 세란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을 파고 들어서 팔과 손톱에 묻은 혈흔을 보자 너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란다. 아무래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일거라고 추측한다.
“자기야, 나좀 제발 도와줘...” 세영이의 간청. 너의 셔츠를 잡는 손. 금빛 눈에 또렷한 공포. 네 남자친구가 얼마나 걱정됐는지를 보자 너의 마음도 아파온다. 자신의 불안장애에 맞서 싸우는것에 익숙해서, 동생이 똑같은 일을 당하는걸 바라보고만 있자니 틀림없이 괴롭겠지. 너는 안심시켜주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준다. 당연히 도와줄 거니까.
“ㄴ-나한테 해줬던거 그대로 세란이한테 해줘, 부탁이야. 틀림없이 세란이한테도 도움이 될거야.” 부들부들 떠는 쌍둥이 동생을 바라보며 속삭인다.
세영이를 꼬옥 껴안자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게 느껴진다. 너는 몸을 살짝 숙여 세영이의 이마에 키스한다. “물론이지. 하지만 그전에... 세영아, 미안한데, 우선 너야말로 먼저 진정해줘. 세란이가 걱정되는건 아는데, 너도 멘붕하면 공황 발작이 더 심해질 거야.” 너의 말에 놀라서 커지는 세영이의 눈. 그리고 찔린 것처럼 쓰라려오는 심장. 듣고싶지 않은 소리지만, 네 말이 맞다는걸 알고있다. “잠깐 나갔다 들어와도 돼, 알았지?”
네 남자친구의 훌쩍임. 눈물이 맺힌 금빛 눈. 그래도 대답대신 끄덕인다. 입술에 조심스럽게 키스를 남기고선 조금 더 꼬옥 껴안자 긴장이 풀리는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너를 밀어내고선 똑바로 바라보는 금안 한쌍.
“아-알았어. 그건 내가 할수 있어. 고마워. 그러니까... 제발 세란이 좀 도와줘,” 말하고선 눈을 감고 너의 대답을 기다린다.
“당연하지. 두번 말할 필요 없어,” 너는 대답하고선 쌍둥이 동생에게 집중하기 전 한번더 키스를 남긴다. 너의 답변에 만족해서, 다른 방에서 숨쉬는데 집중하고 안정되면 다시 돌아올려고 슬쩍 방을 나가는 세영이.
너는 세영이가 나가자 마룻바닥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세란이와 눈을 맞추려고 한다. 눈을 뜨자 공포에 사로잡혀서 너를 바라보는 세란이. 더 가까이 다가가자 숨소리가 얼마나 불규칙적인지 들린다. 얼마나 많이 떨고 있는지가 보인다.
수만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딱히 어느 하나에 집중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너가 주변에 앉아 본능적으로, 마치 너가 무슨 짓을 할거라고 상상한 것처럼, 움츠려든다. 하지만 그 상상이 무엇이든 간에… 상상과는 달리 아무 일도 없어서 동그랗게 커지고선 너를 바라보는 민트빛 눈 한쌍. 여전히 숨을 쉴수가 없고,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이 느껴지지만, 이유는 몰라도… 차분하게 바라보는 너의 눈빛에 조금이나마나 심장이 안정되는게 느껴진다. 눈 씻고 찾아봐도 동정심은 커녕 온기와 사랑밖에 보이지 않는 눈빛. 형을 바라보는 눈길에 어린 것과 똑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다. 또다른 흐느낌이 새어나오자 시선을 딴데로 돌린다. 이 상태로 널 바라볼 수 있을리가 없잖아. 이런데도 어째서 날 나약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거야? 팔에서 머리를 향하고 붉은 머리칼을 정돈하는 두 손.
너는 세란이에게 간절히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접촉한다면 놀라서 즉시 보복하곤 했으니까, 부담주는 행동은 하고싶지 않다. 하지만 세란이는 너가 생각하는것과는 달리, 너가,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목소리로 옮기려는걸 억누르고 있어서, 입밖으로 아무 말도 낼 수 없다.
“세란아? 일어나서 앉아줘. 그렇게 해줄수 있어?” 계속 응시하면서 너는 묻는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할 수 있나? 일어나 앉을 수 있나? 살짝 끄덕이고선 자세를 바꾸는 세란이. 몸을 일으키자 한없이 약하게 느껴지는 팔. 잠시동안 고군분투 했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너가 곁에 있을거란걸 아니까, 일어나 앉는데 성공한다. 주변에 있던 소파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꼬옥 껴안는다.
“잘했어, 세란아... 벌써 잘하고 있어,” 너는 부드럽게 말한다. 너를 바라보는 세란이의 민트빛 눈엔 여전히 공포가 역력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너가 다음엔 무슨말을 할지 기대하는듯 바라보는 두 눈.
“좋아, 다음 단계는 좀더 힘들거야, 알았지? 하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해볼거야,” 너는 말한다. 다시 끄덕이고선 기다리느라 굳게 닫힌 입술.
“우선... 너가 볼 수 있는 것 다섯가지를 말해줘. 만약 주변을 둘러봐야 하면, 그래도 돼. 서두를 필요는 없어.”
잠시 진정할려고 깊은 숨을 들어마시자 감기는 세란이의 눈. 다시 눈을 열고 주변을 둘러본다. 솔직히 거실 치고는 가구가 적은 편이긴 하다. 그래도 쌍둥이 형과 자란 집의 거실보다는 많다. 그 집을 떠올리자 끊기는 호흡과 다시 시작될 뻔한 헐떡거림.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너의 눈과 마주치자 안정되는 호흡. “네... 네 눈이 보여. 형처럼 금빛은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 나처럼... 민트빛인것도 아냐. 네 눈은...” 잠시 생각할려고 말을 멈춘 세란이, “정말 예뻐.” 한숨과 섞인 그 말이 혀끝을 떠나자마자 발그레해지는 세란이의 두 뺨.
“고마워 세란아. 그러면, 또 뭐가 보여?” 너는 답변한다. 세란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는 사실에 주의를 끌고 싶진 않지만, 칭찬은 고맙다. 자주, 특히 너에게는, 하지 않는 말이다. 세란이가 조금씩 너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사실에 네 심장은 긍지로 부풀어오른다. 그래도, 애초에 이런 상태의 자신을 너에게 보여주기까지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을 거란걸 너는 알고 있다.
“으음... 난... TV가 보여. 지금은 꺼져 있고, 우리의 모습이 비춰져. 하지만...”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한 망설임. “가끔 너하고 형이 같이 영화보자고 부추겨. 그 평화로운 순간을 좋아해,” 마지막 문장은 속삭임에 가깝고, 너는 무슨 말인지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너는 대답 대신 미소짓는다.
“계속해,” 너는 부추긴다. 눈 한 켠으로 흘깃 보면 머리가 부스스해졌지만서도 다행히 진정된 세영이가 다시 방으로 몰래 들어온다.
“세영이 형의 안경이 보여.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웃기긴 한데, 그치만... 참 형다운 색이야,” 멋쩍은 웃음과 함께 형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세란이. 전혀 예상치 못한 동생의 말에 잠시동안 움찔하는 세영이. 그의 볼이 발그레해진걸 너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치료시간때 그린 난초 그림이 보여. 정말 못그린 건데, 형이 맘대로 액자에 끼워서 벽에다 걸어놓은 거야,” 눈물을 억누르느라 비통해지는 세란이의 목소리. 다시 숨이 가빠지자, 너와 세영이 둘다 세란이의 과호흡이 재발할까봐 걱정한다.
“난... 세란이 너가 만든 거라서 걸어놓은 거야. 그리고... 우리 자기도 이곳에 너의 흔적을 남기면 좋겠다고 했거든,” 세영이의 속삭임. 네 곁에 앉아서 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너는 그의 손을 꼬옥 쥐고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문지른다. 아직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것 같은 세란이.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느라 주변을 둘러보는 세란이. 하지만 방에 있는것 중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자각에 무릎을 더 꽉 껴안게 된다. 얼굴을 찡그리고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한숨을 내쉰다. 지금까지 잘하고 있었는데, 이제 전부 말아먹었다. “나... 못하겠어. 못해... 못해못해못해-” 흐느낌과 함께 시작된 반복.
“아니야. 할수있어, 세란아. 말했잖아, 서두를 필요 없어. 약속했잖아,” 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세란이에게 다가가서, 머리에 손을 내려놓는다.
흠칫하고선 깜짝 놀라 너를 쳐다보는 눈. 꽉 다문 이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숨. 찰나의 순간동안, 눈에 번뜩이는 분노를 본것 같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분노는 슬픔으로 바뀐다. 너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자 들리는 조용한 훌쩍거림 그리고 다시 닫히는 두 눈. 침묵에 귀가 멀지 않도록 너는 소곤소곤 콧노래를 부른다. 미소짓고선 콧노래의 동참하는, 너의 어깨에 파고드는 세영이. 이럴때의 너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워서, 자신도 동참한다면 세란이가 진정되서 다시 입을 열기를 바란다. 그리고 놀랍게도, 효과가 있는것 같다. 너와 쌍둥이 형을 다시 바라보는 세란이. 고통과 불안이 아직도 역력한 두 눈.
“다른거 생각이 안나는데...” 그말에 메어오는 목.
“괜찮아, 세란아. 공황발작 때문에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지?” 너가 묻자 답변으로 끄덕거림을 얻었다. “이해해. 의사 선생님이 아티반 1 처방해 주셨지? 한 알 먹어볼래? 신경이 진정되면 생각 정리하는게 더 쉬워질거야. 나중에... 좀 피곤해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원한다면, 먹어도 돼.”
어리둥절해서 눈썹을 꿈틀거리는 세란이. “잠깐만,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건 이 형아가 대답할수 있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가 잠시동안 너를 바라보고선 다시 쌍둥이 동생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세영이. “우리 자기도 불안장애가 있거든. 가끔씩 한알은 먹어줘야해,” 그렇게 말을 끝맺는다.
“어, 정말?!”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세란이.
“응, 정말이야,” 너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래서 널 도와주고 싶어, 세란아.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으니까, 맹세해.”
“그-그럼... 알았어. 한 알... 먹어보고 싶어,” 너에게 미소지어 보일려고 하자 자신감이 조금씩 붙는 목소리. 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니까 오래 남지 않는 미소. “먹고 싶은데... 못 일어날 거 같아.”
쌍둥이 동생에게 미소짓고 후드티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내는 세영이. “걱정은 붙들어 매. 숨쉬기 운동때 널 위해서 집어왔거든. 난, 어어.. 자기가 곧 추천할거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너가 자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까 새빨개지는 얼굴.
너는 병을 건네받은 다음, 뚜껑을 열고 세란이에게 건네주기 전에 조심스럽게 병을 흔들어서 한알을 꺼낸다. “의사선생님이 정확히 어떻게 복용하라고 말해주신적 없는거 같으니까, 대신 내가 지금 말해줄게. 혀 밑에다 약을 넣은 다음에 녹여. 혀에 닿으면 정말 맛없겠지만, 그래도, 약효는 빨리 나타날거야.”
네가 말한 대로 하는 세란이. 너희 세명이 기다리는 동안 입을 꾹 다문채 몇분동안 그대로 앉아있는다. 찡그린 세란이를 보자 너는 꺄르르 웃을 수 밖에 없다. 아마 혀로 약을 녹이다가 맛보게 된 거겠지. “네 말이 맞아, 이거 진짜 맛없다.”
“알아, 나도 알고 있어. 그래도, 믿어봐, 도움이 될거야,” 킥킥 웃으면서 말하니까 노려보는 세란이의 시선을 얻는다.
너희 둘을 보자 조용히 웃을수밖에 없는 세영이와, 형에게 미소지을 수 밖에 없는 세란이. 가장 작은 미소라 해도 동생이 미소지어 주자 진심으로 기뻐서 미소로 답할 수 밖에 없는 세영이. “그럼, 이제 머릿속이 차분해진 거 같으니까... 볼수 있는거 하나 더 말해야 하잖아, 그렇지?”
형의 말에 움찔하는 세란이. 눈에 다시 비치는 두려움. “어... 그래, 그러네...” 속삭인 답변, 한손으로 턱을 괼려고 숙인 몸. 얘기하려고 집중할 수 있는 물건을 찾아서 방을 훑는 눈. 완벽한 물건을 찾아내자 너와 세영이 뒤에 있는 그걸 가리키기 전에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웃음. “우리 세명을 찍은 저 사진. 너가 이사온 날에 형이 찍자고 했지.”
그때를 떠올리자 잠시 멎은것 같은 너의 심장. 너는 고개를 돌려 사진을 직접 바라본다. 불안한듯 쳐다보는 세란이. 혹시 둘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너는 궁금해한다. 둘중 누구라도 먼저 입을 열기 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세란이의 생각. “나는... 너가 이사오는게 정말 무서웠어. 세영이 형을 믿는것도 망설이고 있었는데, 너가 온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너를 못 믿었다는건 아냐. 오히려... 너를 다치게 할까봐 걱정되었어,” 말을 끝맺자 다시 숨쉬는게 힘든 것처럼 보인다. 살짝 찡그린 미간. 흐리멍텅한 눈. 너를 바라보면서 두통을 느끼는 건지 궁금해진다.
“ㅇ-왜 그런게 걱정됐어?” 물어보면서 말을 더듬을 수 밖에 없다.
“이걸... 지금 말해줄 수 있는지 모르겠어. 아직도...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야. 이건 테라피스트 선생님 한테도 아직 말해주지 않은거야,” 방을 훑는 눈을 보면 이 대화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거란걸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억눌러 발버둥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세란이. 그 얘기를 두루뭉술하게 나마나 꺼낸게 이 느낌을 더 불러일으킨 걸지도 몰라. 그래도 거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사고회로가 다시 멈춘 느낌이 들자 더더욱 잘, 안다. 이 복잡한 감정으로부터 마음을 딴 데로 돌릴게 필요하다. “그래서... 다음 단계는 뭐야?”
“아! 그럼... 너가 볼수 있는것 다섯가지 다음엔... 너가 만질 수 있는것 네가지를 말해봐,” 너는 다시 미소지으면서 대답한다. 세란이에게는 힘든 시간이란거 알고 있지만, 아직 도망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너의 도움을 구하려고 해서 기쁘다.
“내가 만질 수 있는것 네가지?”
“응! 볼수 있는것들 만큼 자세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그건 정말 잘했어! 지금까지 정말 잘하고 있는데, 알고 있지?” 너는 세란이를 북돋아준다. 언뜻 세영이가 동의의 표시로 끄덕이며 동생을 향해 미소짓는게 보인다.
“그럼... 첫번째는 이 소파일까. 이렇게 등을 맞대고 있으니까 편안해. 그리고... 바짝 신경쓰게 돼, 아아-” 잠시 머리를 움켜잡으며 내뱉은 한숨. 지금 이 모든게 두통을 일으키는게 틀림없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계속해, 세란아,” 이번에 입을 연 건 세영이었다.
찡그린 미소로-그래도 미소는 미소니까-형을 바라보는 세란이. “그럼... 어어... 내가 만질 수 있는 것 두번째는... 마룻바닥이야. 손가락으로 훑으면 차가워. 이 소파에서 느끼는 온기하고는 정반대야,” 말을 이으면서 바로 곁에 있는 마루 바닥을 훑는 손가락. 생각을 정리하면서 직접 모든것을 만져봐야 하는 모양이다.
“마지막 두개는... 한번에 말해도 괜찮아?” 갑작스러운 물음. 기대하는듯 너와 형을 바라보는 두 눈. 아주 조금이나마나 올라간 목소리.
“너가 원한다면.”
“그럼... 내가 만질 수 있는것 마지막 두가지는... 너하고 세영이 형이야,” 그렇게 내뱉지만 무릎에 얼굴을 파묻어서 단어가 약간 뭉개진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손잡고 싶다고 말하는 거지?” 세영이의 조용한 놀림. 너는 재빨리 남자친구의 배를 팔꿈치로 친다. 그럼 작은 소리로 ‘으윽' 거리고선 키득거리겠지. 그래도 세란이가 공황 발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던 도중 너희들의 손가락이 서로 엮인건 사실이다.
“형은 무시해. 그래도 손 잡을래? 만약 지금 원하는게 그거라면, 괜찮아. 그리고 너가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까지 놓지 않을께,” 그렇게 말하는 너의 상냥한 목소리.
살짝 고개를 들어 너희 둘을 다시 바라보는 세란이. 무릎을 감싸던 팔을 펴고 너희에게 손을 내민다. “해줘. 그럼... 정말 고마울 것 같아,” 중얼거리자 새빨개지는 얼굴. 너희 둘에게 이런걸 물어보는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게 간절히 필요하다. 너가 세영이 형에게 주는 편안함의 부스러기 만이라도 느끼고 싶다. 그 편안함을 자신도 느꼈으면 좋겠, 아니, 느껴야 한다. 대답 대신 너와 세영이 둘다 손가락을 엮을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괜찮아졌어?” 입모아서 동시에 물어보는 너와 세영이.
“응, 고마워,” 대답하면서 너희 둘에게 배시시 웃어보이는 세란이. 하지만 바로 그때 너와 세영이 둘다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세란이가 너희 둘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너의 손을 놓고 너희들을 껴안는다. 둘에게 기대자 떨리는 몸은 세란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보여준다. 대답 대신 너희 둘이 할 수 있는건 더 꼬옥 안아주는것뿐. 너의 손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어깨에 파묻힌 흐느낌이 들린다. 동생의 머리 위에 턱을 괸 세영이. 여전히 두 팔은 동생을 꼬옥 껴안고 있다.
마치 목숨이 걸리기라도 한것처럼 너희 둘의 품에 파고드는 세란이. 세란이가 흐느끼자 너희 세명은 말없이 앉아있는다. 그래도 이제 진정되기 시작한것 같다. 둘에게서 느껴지는 온기가 정말 좋아서, 포옹에 몸을 맡기자 긴장이 풀어지는걸 세란이는 느낀다. 계속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지, 이렇게 응석 부려도 괜찮은 건지 궁금해진, 아니 궁금해할수밖에 없다. 이렇게 안는건 말할 필요도 없고, 형의 신체적 접촉을 허락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너와 쌍둥이 형에게 들러붙는다. 지금 이렇게 너희 둘의 팔에 파묻힌 순간만큼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사실은, 이렇게 꽉 껴안긴 적은 전혀 없었다고 확신한다. 최소한 이젠 형이 왜그렇게 들러붙는지 이해되는것 같다. 정말 놀라우면서도 기분좋은 느낌이니까.
너의 어깨에서 머리를 떼고선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너희 둘을 바라보는 세란이. 잠시동안 생각을 정리하고나서 쌍둥이 동생은 천천히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그래서... ㄷ-다음 단계가 뭐야?” 얼굴이 새빨개졌으면서도 물어본건, 지금 받고 있는 신체적 애정에서 관심을 딴데로 돌리려는 의도라는게 명백하다.
너는 잠시동안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콧노래를 부르면서 세란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붉은 곱슬머리에 파묻히는 너의 손가락. 손끝으로 두피를 마사지하기 시작한다. 그 느낌에 깜짝 놀라서 커지는 민트빛 눈. 더욱 새빨개지는 세란이의 두 뺨. 하지만, 충격이 사라지자, 쌍둥이 동생은 너의 손에 더욱 기댄다. 감기기 시작하는 두 눈. 웃으면서 실수로 동생을 툭 쳐버린 세영이. “이런, 머리 쓰담쓰담 하는거 내 몫도 뺏어가는거야? 이거 질투나는데.” 웃음에 서린 조소 약간.
“조용이 해, 세영아. 즐기게 내버려 둬.“ 계속 콧노래 부르기 전에 너는 꾸짖는다. 그 와중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세란이. 틀림없이 무슨 말을 하면 형에게 한방 먹일수 있을지 혼란스러운 거겠지. 공황에 떨리는 눈을 보자 머릿속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간에, 다음 단계가 뭔지 알고싶다고 했지?” 너가 묻자 시선을 피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세란이.
“네가 들을 수 있는것 세가지,” 이번껀 직접 기억해내서 입을 연 세영이.
“응, 바로 그거야. 네가 들을 수 있는것 세가지.” 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남자친구에게 웃어보인다. 답변 대신 활짝 웃고선 재빠르게 키스를 남기는 세영이. 그러자 웃음이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는다.
“너의 웃음소리,” 대답이 그렇게 빨리 나올 거라곤 예상치 못해서, 세란이가 갑자기 말하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는 너와 세영이. 너와 눈을 마주친 쌍둥이 동생의 눈에 잠든, 공포 뒤에 숨겨졌던 동경을 너는 눈치챈다. “ㄴ-너의 웃음은...” 그렇게 다시 입을 열었지만서도 너가 바라보고 있다는걸 깨닫자 잠시 망설인다. “내가 들은것중 가장 사랑스러운 소리야. 형처럼 활기찬건 아니지만, 차분하고 부드러워. 그리고 나... 난 ㄱ-그거 듣는거 정말 좋아해.”
너는 두 뺨이 따뜻해지는걸 느낀다. 이미 눈을 칭찬할 때부터 방심하고 있었는데, 이젠 웃음소리를 칭찬한다? 오늘밤동안 네 남자친구의 동생이 보여주는 호전 속도에 감탄하게 된다. 다만 이 발전을 이뤄내는데 공황발작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테니 아쉬워진다. “ㄱ-고마워, 세란아. 그렇게 말해줘서.” 대답하자 반짝이는 세란이의 눈을 본다.
“ㅊ-천만에...” 말을 더듬으면서도 너와 형의 손을 다시 잡는다. 너희 둘다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엮자 덜 떨고 있는게 느껴진다. 너가 칭찬을 고마워하자 심장이 두근거려서, 너를 좀더 칭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로 손을 놓지 말고, 오늘밤처럼 많이 좋아졌다고 계속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진작에 너를 빨리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전에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바꾸기엔 이미 한참 늦었다. 너와 형이 자책하는걸 원치 않을거란걸 아니까 그 생각은 즉시 머리에서 떨쳐내었지만.
“그리고 또… 내 숨소리가 들려. 전보다는 좀더 조용하면서 숨가쁘게 헐떡거리는 소리가 아니야. 그리고… 더이상 숨막혀 죽을거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너와 세영이를 좀더 꼬옥 붙잡으면서 시인한다.
“응, 잘하고 있어, 세란아,” 너는 속삭인다. 그리고선 몸을 살짝 숙여서 쌍둥이 동생의 이마에 작은 키스를 남긴다. 안심시키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세란이는 움찔하고선 예상치 못한 공포가 서린 눈으로 널 쳐다본다. 혹시 실수한건가 싶어서 마음이 저려온다. 하지만 세란이는 틀림없이 심란해 보였으면서도 너를 밀쳐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너의 손가락은 여전히 세란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있으니까. 아직은 접촉해도 괜찮은 모양이다.
슬픔에 잠기는 너의 눈을 보자 잘못 반응했다는걸 깨달은 세란이. “젠장. ㅈ-저-정말 미안해. 그냥... 갑자기... 그럴줄은 예상조차 못했어,” 너의 눈을 피하면서 속삭인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서, 너가 계속 두피를 마사지 할 수 있도록 손에 다시 머리를 기댄다. 정말 좋은 느낌이어서 이게 자주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거 세영이 형한테만 하는거 같아서, 그래서… 어어...” 유치하게 들려서 부끄러워져서 말끝을 흐린다.
“괜찮아, 세란아,” 쌍둥이 동생의 손을 꼬옥 잡으면서 대답한 세영이. “딱히 우리가 사귄다고 해서 키스한건 아니거든. 그런걸 거창하게 여기는 타입이 아니야. 그런 작은 키스는 감사와 편안함을 표현하는 일종의 방식이야.” 너를 대신해서 설명해주자 동의의 뜻으로 끄덕인다. “젠 형이나 유성이하고도 그런짓 해봤을걸.”
“그래도, 가장 많이 키스받는건 세영이야. 순전히 데이트하는 사이니까.” 꺄르르 웃으면서 너는 말한다. 얼굴이 새빨개지자 무안해져서 너에게서 고개를 휙 돌릴수 밖에 없는 세영이. “걱정하게 했으면 미안해, 세란아. 갑자기 그러기 전에 먼저 설명했어야 하는 건데. 특히 지금은 더더욱. 의도치 않게 선을 넘어버렸어.“
“아! 아, 아니, 그런거 아냐! 괜찮아... 너... 너가 잘못한건 없으니까,” 너를 안심시키고 싶어서 서둘러서 쏟아져 나오는 말. “실은… 정말 좋아했어. 밀쳐내서 미안해.”
“미안해할 필요 없어, 세란아. 그래도, 좋아했다면… 자.” 그렇게 말하면서 너는 다시한번 꼬옥 껴안고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댄다. 스르륵 감기는 세란이의 눈. 입에서 새어나오는 만족의 소리. 손을 때자 세란이는 허리를 숙여서 다시 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나... 내가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소리가 뭔지 알거같아.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거야.” 속삭임을 들으려고 온갖 힘을 다해 귀를 쫑긋 세우는 세영이와 너. “너… 조금 전에 콧노래 불렀잖아. 그거… 다시 듣고 싶어. 들으면서 긴장 풀렸거든.”
단순한 부탁이지만 너는 기쁘게 실천한다. 곧바로 조용한 콧노래를 시작하면서 눈을 감는다. 온기를 향해 너와 세영이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세란이는, 할수만 있다면 영원히 이 상태로 있고싶어진다. 콧노래를 계속하면서, 세란이가 물어본 걸 좀더 깊이 곱씹는다.
쌍둥이 동생을 구출하기 전 세영이와 보낸 시간들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세란이를 만나러 민트아이에 처들어가기 전의 기억이다. 리카의 오피스텔의 침대에 누운 세영이와 너. 전날 있었던 일 때문에 기진맥진 해서 너의 무릎을 베개삼아 잠에 빠지던 세영이. 지금 세란이에게 하는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던 너. 그리고 자장가 불러달라고 했던것 까지. 오늘날까지도, 적발의 해커가 그런걸 물어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치만 지금 그런 것처럼 군말 없이 부탁을 받아들였지. 지금까지도 세영이와 보낸 가장 좋아하는 추억들 중 하나여서, 떠올리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쌍둥이가 이렇게까지 닮을 수 있다는건 신기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다음 단계 준비됐어, 세란아?” 계속 흥얼거리다가 너는 입을 연다.
“으응?” 한손으로 비비면서 뜬 눈으로 너를 바라보는 세란이. 잠시 깜박 잠든게 아닌가 궁금해진다. “응, 어. 끝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좀 많이 피곤해지거든,” 무안한 미소를 곁들인 설명.
“괜찮아. 아티반 먹으면 피곤해질거라고 했잖아. 지금 가서 누울래?” 너는 물어본다. 잠시 세영이 쪽을 힐끗 보자 아예 잠에 빠진 남친이 눈에 들어온다. 너의 다른 어깨에 침을 흘리는걸 보자 깨우지 않을려고 웃음을 억누르게 된다.
자신이 그러는 것처럼 너에게 기댄 쌍둥이 형을 보자 조용히 웃는 세란이. 세란이에게도 둘러진 든든한 그 팔. 쌍둥이 동생이 일어나고 싶어도,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아니, 괜찮아. 기다릴 수 있어. 다음 단계 뭔지 말해줘.”
“너가 냄새 맡을 수 있는것 두가지. 다른것보다 대답하기 어려워도 이해해.”
세란이의 조용한 웃음소리에 너는 깜짝 놀란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가장 쉬운 건데.”
“정말? 그럼 그 두가지가 뭔지 말해줘,” 세란이가 좀더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어서 너는 미소짓는다.
“첫번째는,” 운을 떼면서 손가락 하나를 치켜올리는 세란이, “세영이 형의 허니봤다칩 입냄새야.” 너희 둘은 꺄르르 웃으면서 세영이를 흔들어 깨운다. 세영이는 잠시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너희 둘을 쳐다보았지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신경쓰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신 피곤한듯 너에게 부비적거리더니 쌍둥이 형은 다시 눈을 감는다. 그러자 자신의 생각을 좀더 말해줄려고 세란이는 두번째 손가락을 핀다. “두번째는… 항상 너에게서 나는것 같은 정말 좋은 바닐라 향기야.”
“항상?” 너가 놀리자 머리칼 색깔만큼이나 새빨개지는 세란이의 얼굴.
“응! 항상! 미쳐버릴거 같아...” 대답하자 커지는 목소리와, 허공에 손을 내던지는 세란이. 그의 답변에 너는 웃으며 다시 세란이를 꼬옥 껴안고선 새빨간 뺨 양쪽에 키스를 남긴다. 너가 떨어지자마자 즉시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하는 세란이.
“그리고 방금 여러분은 두번째 최마토를 목격하셨습니다,” 너는 무미건조하게 말하면서 세란이를 향해 혀를 내민다.
“ㅊ-최마토?!” 조그맣게 칭얼거리면서 말을 더듬는 세란이.
“최 토마토,” 한쪽 눈을 뜨고 동생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는 세영이. “그리고 얘 말이 맞아. 넌 지금 최마토야.”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다니까! 둘다 나빴어,” 여전히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려 하면서 칭얼거리는 세란이. 너는 다시 키득거리면서 쌍둥이 동생에게 환하게 웃어보인다.
“며칠전에 내가 세영이한테 붙인 별명이야. 지금 너만큼이나 새빨갛게 얼굴 붉히니까 머리색하고 똑같다고 토마토라고 농담했어. 그리고 ‘최마토’를 내뱉었고... 나머지는 전부 알겠지,” 너는 설명하면서 부드럽게 네 남자친구의 머리를 토닥인다. 다른 손으로 세란이를 쓰담하는 것처럼.
“그것 참... 바보같아. 두번 다시는 나 그렇게 부르지 마,” 너를 노려보면서 세란이는 그렇게 말한다. 정말로 화난게 아니라, 단지 갑자기 놀리는걸 싫어할 뿐이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미안해, 세란아,” 또다른 웃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 너는 말한다. “그러면 마지막 단계가 뭔지 말해줄까?”
대답 없이 여전히 너를, 그래도 조금이나마나 풀어진 눈빛으로, 노려보는 세란이. 너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고대하고,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자 한숨짓는다. “계속 할거야?” 기다리다 지쳐서 드디어 너를 부추긴다. 뺨은 이제 덜 새빨개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따뜻한게 느껴지자 문자 그대로 집중할 수 있는 다른게 아무거나 있었으면 하는 세란이.
“너가 맛볼수 있는 것 한가지.” 왜인지는 몰라도 그 말에 다시 새빨개지는 세란이의 얼굴. 어쩌면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절대 말해서는 안될, 특히 너의 어깨에 형이 기대고 있을때는 더더욱 입밖에 내선 안될 생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형이 다시 잠든건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세란이는 위험을 무릅쓸 여유가 없다. 방황하다 너의 입술을 바라보는 두 눈. 정말 보드라워 보여서, 무슨 맛이 날까 잠시동안 궁금해한다. 그 살짝 부풀린 볼은 정말이지, 매우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다시 위를 올려다보자 빤히 바라보는 너의 시선을 만난다. 어리둥절해 하는 너의 표정. 궁금해서 올라간 눈썹 하나.
“어... 딸기맛 아이스크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야. 지금 냉동고에도 좀 남아있는데,”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 너가 좀더 추궁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물론, 인생은 항상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너가 실제로 말하고 싶은건 그게 아니지 않아?” 그렇게 물어보는 너의 목소리는 속삭임에 가깝다. 어떻게 대답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좌절해서 가늘어진 민트빛 눈이 시선을 피할땐 별로 놀라지 않는다. 다시 들리는 한숨, 이마에 가져다 대는 손.
“응, 당연히 아니야! 하지만 말하고 싶은거, 절대 못말해!” 고함 그리고 다시 올라가는 손.
“젠장, 세란아, 그냥 키스하라니까,” 세영이가 투덜거리자 너희 둘다 깜짝 놀라서 흠칫한다.
“ㅁ-뭐?!” 너와 세란이 둘다 말을 더듬는다. 쌍둥이 형을 바라보는 너희들의 얼굴은 새빨갛게 불타오른다.
“원하는게 뭔지 다 티난다니까. 만약 이게 도움이 된다면, 왜그런지 알거같아. 지금까지 계속 세란이를 안심시켜주고 공황발작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줬잖아, 만약 내가 세란이라면 나라도 널 키스하려 들걸, 지금당장,” 다시 똑바로 앉고 눈을 비비며 잠을 몰아내는 네 남자친구의 설명.
“세영...” 세영이가 고개를 젓자 너의 말은 끊긴다.
“너희 둘다 사랑해. 그리고, 이런게 자주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세란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난 괜찮아. 하지만, 자기가 괜찮지 않다면, 당연히 최종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어,” 직접 입술을 가볍게 맞추면서 말하는 세영이.
이 상황에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너가 바라보자 시선을 회피하는 세란이. 한편으로는, 형 말도 일리가 있다. 정말 간절히 너를 키스하고 싶다. 그래도... “아니. 내가 형 여친한테 키스할 리가 없잖아, 세영이 형. 그걸 원하더라도 괜찮아질거 같진 않은데,” 서늘하다 못해 싸늘한 세란이의 목소리. “바보짓 그만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서 너는 한숨을 내쉰다. 애초에 어쩌다가 이런 흐름이 된건지도 모르겠다. 실망한 세란이와, 그리고... 지금 정말 자신없어 보이는 세영이. “이마나 뺨에 하는 키스는 좀 사적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정확히 뭘 원하는 거야? 됐어, 세영아. 아니. 안할거야,” 단호한 목소리로 너는 말한다. 남자친구의 얼굴을 두손으로 잡은 다음 너를 바라보게 돌린다.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찬란한 금안 한 쌍을 바라본다. “어차피 너가 바라는건 그게 아니라고 얼굴에 다 적혀 있거든. 그러니까, 다음부턴 그런거 괜찮다고 널 몰아붙이지 마. 알았지?”
“아-알았어...” 네 목소리에 담긴 강경함에 깜짝 놀란 답변.
“좋아, 그럼 이제... 모두 침대로 갈까? 네 동생한테 키스할건 절대 아니지만, 지금쯤이면 껴안고 쓰담해줘도 괜찮을거 같거든. 그리고, 어차피 우리 세명이 모두 누울 정도로 넓잖아,” 너는 추천한다.
“그거라면 찬성임요.”
다시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번에는 너의 말에 반대하지 않은 세란이. 분명 너희 둘은 그 결정을 미리 내렸고... 한명도 아니고 두명이나 붙어 있다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겠지. 그리고 모두가 눕기 전에, 너는 세란이의 팔을 치료해야 한다는걸 지적한다. 손톱이 파고든 흉터에 알코올을 바르는건 쓰라려서 세란이는 움찔하지만, 감염되지 않으려고 그러는걸 알고있다. 너가 한 팔에 붕대를 감을 동안 세영이는 다른 팔을 맡았다. 너희 둘이 작업할 동안 세란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사람이 보여주는 정성에 감사해한다. “고마워,” 감사의 속삭임. 붕대를 다 감자 너와 형에게서 포옹을 받는다.
침실에서, 너와 세영이는 세란이를 사이에 두고 자기로 결정한다. 그렇다면 만약 공황 발작이 다시 닥쳤을 때 (자신의 방이 아닌 곳에서 일어난다면 그럴 거란 예감이 든다), 최소한 너희 둘과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낄테니까. 둘 사이에 남자친구의 동생을 두는건 이상했지만, 그래도, 오늘 세란이가 나아진걸 보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만약 상황이 또 악화된다면 같이 거쳐간 단계를 기억하길 바라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기쁘게 다시 이끌어 줄 수 있다.
아직도 이 모든 일이 어쩌다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한 세란이, 하지만, 세명이 침대에 드러누웠을때... 너와 형 사이에 껴있어서 기쁘다. 너희 둘이 세란이의 품으로 파고 들자 조금 전 너희에게 느꼈던 사랑이 다시 느껴진다. 물론, 키스는 아니였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공황 발작은 잊혀진 채, 세란이는 이 소소하고 조용한 순간을 즐기고 감사해한다. 회복을 향한 작은 한걸음이다. 너희 둘이 곁에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으니까!
오래 지나지 않아 너희 세명은 달콤한 잠에 빠진다.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긴 대화를 나눠야 할거라는거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너희 세명이 느낄수 있는건 서로의 온기 뿐이라는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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